[그리스 총선 ‘유로존잔류’ 선택]세계 금융시장 “파국 면했다”… 전문가들 “단기 호재 그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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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해결 이제 시작… 갈 길 먼 유로존

유럽과 세계 경제가 살얼음판을 매번 힘겹게 넘어서고 있다.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잔류를 주장한 신민주당이 1당을 차지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스 좌파 집권→유로존 탈퇴→세계 금융시장 파국’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가까스로 모면했지만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이제 시작’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리스 내 반(反)긴축 여론 비등, 스페인의 전면적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 등 악재가 산적해 이번 그리스 총선의 효과는 9일 스페인 구제금융 발표 때처럼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 여전

우선 총선 이후에도 그리스의 정치적 리스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번에 승리한 신민주당이 연정(聯政)을 언제 구성할 수 있을지, 이 연정과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구제금융 재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불투명하다. 현재 구제금융의 내용 자체를 손질하려는 신민주당과 상환기한 연장 등 세부적인 항목들만 생각하는 EU 간의 입장 차가 매우 크다. 상황에 따라 그리스가 유로존을 자발적으로 탈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퇴출’될 수도 있다. 재협상이 어긋나거나 그리스가 긴축 약속을 못 지키면 기존 1, 2차 구제금융분 2400억 유로(약 352조8000억 원)조차 제때 집행되지 않아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악화된 국민 정서를 어떻게 달랠지도 미지수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여론조사를 보면 긴축에 반대하는 여론이 70%에 이른다”며 “좌파 시리자당도 지지율이 크게 약진한 만큼 이들이 의회에서 긴축에 강력히 반대하면 정치, 사회적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은 그리스 총선으로 잠시 잊혀진 스페인의 재정 부실로도 향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68.5%이지만 올해 늘어난 빚에 최근 발표된 구제금융 규모까지 더하면 올해는 90%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장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재정 악화를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특히 지방정부와 은행 부실이 심한 스페인은 경제성장을 통해 빚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제2의 그리스가 될 확률이 높다”고 진단했다.

결국 금융시장은 한동안 그리스 정치상황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국채시장만을 불안하게 주시한 채 각국의 일회성 경기부양책만 손꼽아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럽 은행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고 영국중앙은행(BOE)도 금융권에 50억 파운드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18일 아시아 증시는 더 힘을 받았다.

다만 그리스가 파국을 면하면서 이들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책을 서둘러 발표할 명분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관측이 많다. 유로존 위기의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은행동맹이나 유로본드는 독일 등 일부 국가의 반대가 여전해 현실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분석팀장은 “이제 실마리를 푸는 단계에 들어섰을 뿐”이라며 “그리스 연정이 구제금융 재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유로존 국가 전체가 긴축과 경기부양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그리스 유로존 남아도…”

정부는 일단 그리스 총선 결과에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며 안도감을 드러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은 “총선 이후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금융시장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유럽 재정위기를 둘러싼 최악의 상황은 넘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주요 20개국(G20) 및 EU 정상회의, 스페인 그리스의 국채 발행 등 유로존의 향방을 가를 일정이 줄지어 있어 당분간 긴장을 늦추지 않을 계획이다. 재정부와 한국은행은 18일 긴급 시장동향 점검회의를 열었고 주요 국실을 중심으로 비상근무체제를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18일 보고서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더라도 한국의 수출은 여전히 유럽 재정위기의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EU가 전체 수입을 10% 줄이면 한국의 대(對)EU 수출은 5.5% 감소하고 중국의 대EU 수출이 10% 감소할 경우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4.9% 줄 것이라고 각각 전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그리스 총선#유로존잔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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