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SSM” 껄껄 웃는 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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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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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곡제일시장’에 무슨 일이

지난달 28일 휴일을 맞아 서울 중곡제일시장을 찾은 고객들이 점포를 둘러보고 있다. 많은 재래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중곡제일시장은 조합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힘을 합쳐 생존에 성공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달 28일 휴일을 맞아 서울 중곡제일시장을 찾은 고객들이 점포를 둘러보고 있다. 많은 재래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중곡제일시장은 조합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힘을 합쳐 생존에 성공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부처님오신날인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

지하철 7호선 중곡역에서 약 7분을 걸어 골목을 두세 번 꺾어 들어가서야 겨우 아담한 재래시장을 찾을 수 있었다. T자형으로 꺾인 시장 초입에는 올망졸망한 여러 점포와는 대조적으로 널찍한 공간을 차지한 대기업슈퍼마켓(SSM)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있었다. 재래시장과 SSM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보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은 SSM이 아예 시장 안에 들어와 있다.

SSM과 재래시장의 ‘기묘한 동거’를 보며 상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짐작했지만 딴판이었다. 휴일을 맞아 장을 보러 나온 손님들로 시장터는 북적이는데 SSM 매장은 비교적 한산했다.

박태신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올해 초 이마트가 들어왔을 때 상인들이 잔뜩 긴장했지만 매출엔 거의 타격을 입지 않았다”며 “오히려 SSM이 시장 안에 들어온 덕에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시장까지 둘러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며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을 제한하는 규제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중곡제일시장이 주목을 받고 있다. 4월에는 정재훈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장과 임채운 서강대 교수(경영학·전 한국유통학회장)가 이곳을 방문했다. 쓰러져가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지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재래시장의 연평균 매출액은 2009년 159억4000만 원에서 2010년 158억2000만 원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중곡제일시장의 매출은 204억5000만 원에서 205억9000만 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주변지역 상권인 명곡, 신성, 능동시장이 2000년대 들어 모두 쇠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이는 조합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 다른 재래시장들이 친목단체 성격인 ‘상인회’ ‘번영회’ 수준에 머물 때 중곡제일시장은 협동조합을 설립해 매달 조합비를 걷어 세무 및 법무 컨설팅, 공동 브랜드 출시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한 예로 정부가 2005년부터 아케이드(눈이나 비가 올 때에도 장을 볼 수 있도록 지붕을 설치하는 것) 설치를 지원할 때 주변 재래시장들은 비용 분담을 놓고 상인들 사이에 이견이 생겨 결국 사업 추진에 실패했지만 중곡제일시장은 조합이 나서 상인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중곡제일시장은 1990년대 후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번성했던 주변의 한 시장보다 권리금이 더 오르는 등 상승세를 타게 됐다.

고질적인 임차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자금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독특하다. 재래시장은 점포를 소유한 건물주와 상인이 임차료를 놓고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중곡제일시장도 거의 매년 9%씩 오르는 임차료를 못 견디고 점포를 내놓은 상인이 전체의 25%에 이른다. 임차료 부담이 커 일부 상인들은 이른바 ‘깔세(점포 공간 일부를 세를 받고 재임대하는 것)’를 내주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곡제일시장 협동조합은 지난해부터 상인들에게 매달 3만 원 이상을 거둬 상가건물을 아예 통째로 사들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상인들이 곧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임 교수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상가건물 매입을 추진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성공 사례를 늘리는 차원에서 정부와 금융권이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SSM#전통시장#중곡제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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