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천광암]동반성장위가 ‘애정남’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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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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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산업부 차장
천광암 산업부 차장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제도를 유통업 등 서비스업 분야에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공청회를 열어 지정방식과 규제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도 제시했다.

동반성장위는 지난해 제조업 분야 79개 품목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했지만 기준의 객관성과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중기 적합업종의 범위를 비(非)제조업 분야까지 넓힌다면 논란과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KBS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로 인기를 끈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의해 주는 남자)을 연상시킨다. 변화무쌍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어떤 사업이 중소기업에 적합하고 어떤 사업이 적합하지 않은지에 대한, 딱 떨어지는 기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애매한 것에 대한 정의가 콩트의 소재로는 제격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산업정책의 틀이 되는 것은 난센스다.

특히 중기 적합업종 제도는 1979년 도입됐다가 글로벌 경제시대에 맞지 않아 2006년 폐기된 중기 고유업종 제도의 복사판이다. 중기 고유업종은 도입 초기에는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한국경제의 개방 수준이 높아지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예컨대 안경테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들이 고유업종 보호라는 ‘온실’ 속에 안주하는 동안 외국기업들이 한국시장을 통째로 삼키다시피 했다. 일본을 능가하는 반도체 강국임을 자부하는 한국이 반도체 접착제를 못 만들어서 일본에서 수입하는 현실 또한 고유업종 제도가 낳은 한 편의 코미디다.

더구나 시대에 맞지 않아서 창고 구석에 깊숙이 넣어둔 먼지투성이 잣대를 다시 꺼내 들고, 제조업보다 성격이 애매한 서비스업을 재단하려는 것은 더 많은 무리와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적합업종 제도는 폐쇄된 시장 안에서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 양자가 경쟁하는 제한적인 구도에서나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유통업을 예로 들자면 외국기업들의 존재를 논외로 치더라도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온라인이다.

한국의 온라인시장 규모는 2010년 이미 백화점 매출총계를 넘어섰고, 이후에도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위치기반서비스(LBS)와 같은 응용서비스의 발전으로 모바일 쇼핑도 동네상권을 빠른 속도로 파고들고 있다. 일본에서 도요타자동차의 경쟁사는 벤츠나 BMW가 아니라 휴대전화라는 게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젊은층이 ‘휴대전화 삼매’에 빠져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하물며 유통·서비스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는 자동차와 견줄 바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에 대해 강제휴무일을 지정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등 갖은 정책수단을 동원해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살리기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유통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일자리 창출과 서민물가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간산업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영업 및 추가출점 제한으로 성이 안 차, 중기 적합업종까지 동원해 ‘삼중사중’으로 규제를 하면 해당 대기업만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다. 농민을 포함한 중소 납품업체, 시간제 근로자 등 고용취약계층도 함께 고통을 받게 된다. 중기 적합업종의 확대는 제조업 분야에서 성과가 충분히 검증된 다음에 논의하는 것이 옳다.

천광암 산업부 차장 iam@donga.com
#동반성장위#적합업종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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