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림에 근무한 업보?… ‘직원분양’ 덫에 우는 400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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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업계 관행 ‘눈속임’ 분양… 회사 법정관리로 고스란히 떠안게 돼

《 2일 최종부도가 난 풍림산업을 퇴직하며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던 A 씨는 최근 날벼락을 맞았다. 은행에서 ‘이달부터 160m²대 풍림아파트 두 채에 대한 중도금 대출이자 명목으로 290만 원을 납부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풍림에 근무할 당시 미분양 아파트 두 채를 강제로 떠맡은 게 화근이었다. “중도금 대출이자를 책임지고, 나중에 다시 매입해 주겠다는 회사의 약속을 믿고 명의만 빌려준다는 생각으로 계약서를 썼다”며 “수입이 끊겨 생계도 막막한데 어떻게 300만 원 가까운 돈을 마련하느냐”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
시공능력 30위의 대형 건설업체 풍림산업이 부동산 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풍림산업이 미분양 아파트를 강제로 떠맡긴 직원 400여 명이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밝혀졌다.

○ 직원에 미분양 아파트 강제로 떠넘겨

풍림산업이 직원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긴 것은 계약률이 일정 수준 이상인 것처럼 ‘눈속임’을 한 뒤 은행 등으로부터 회사 운영자금을 조달하려는 의도였다. 직원들에게 명의를 빌린 대신 중도금 대출이자 등을 내주고, 해당 아파트가 준공될 무렵에는 되사줘 직원들에게 돌아갈 피해는 거의 없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회사가 부도에 처하면서 이 같은 계획은 모두 뒤틀리고 말았다.

지난해 풍림산업에서 퇴직한 B 씨의 경우 2008년 말 대전에서 분양된 170m² 아파트를 떠안았다. B 씨는 “회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던 시기여서 혹시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크지 않은 작은 규모의 아파트를 요청했지만 회사가 강제로 대형 아파트를 떠맡겼다”고 말했다. 당시 풍림산업은 B 씨의 퇴직금 일부를 계약금으로 쓰고, B 씨 이름으로 중도금 대출을 일으켜 회사 운영자금으로 썼다.

B 씨는 “현재까지도 계약금으로 쓴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며 “직원들 중에는 아파트를 세 채까지 떠안아 월 지급 이자만 700만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이 문제가 처리되지 않으면 당장 이달 말에는 수백 명이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B 씨는 현재 피해직원 비상대책위원회에 가입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포함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 제2의 풍림산업 막을 대책 시급

문제는 풍림산업 피해직원들이 법적으로 구제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D법무법인 권모 변호사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고려해 볼 수도 있지만 회사의 강제성이 있었다 해도 계약당사자 책임이 우선인 데다 사정을 봐줄 경우 금융기관 부실 문제까지 얽히게 돼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부도난 C사 등의 경우 미분양 아파트를 떠안은 직원들이 개인파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문제는 장기화되고 있는 주택경기 침체로 자금난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이 규모만 다를 뿐 대부분이 풍림산업처럼 직원에게 강제로 미분양아파트를 떠넘기는 일을 관행처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안중언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연합 조직부장은 “풍림산업처럼 드러나지 않았을 뿐 대부분의 주택업체가 사정이 비슷하다”며 “또 다른 풍림산업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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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건설#직원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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