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내비’ SK-KT 같지만 다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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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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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업체가 한국에서 맥을 못 추는 분야가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내비게이션이다. 세계 1위 업체인 미국의 가민이 한국에 진출해 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국산 내비게이션 수준이 워낙 높기 때문이었다. 최근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2009년 말부터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구글이 무료 내비게이션으로 기존 내비게이션 회사의 매출을 갉아먹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구글 같은 인터넷 기업 대신 통신사가 이런 역할을 맡았다. 》
시작은 SK텔레콤이었다. 이 회사는 2002년부터 휴대전화로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해 덜 막히는 길을 알려주는 ‘T맵’(티맵)이란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는 화면도 작고 이용료도 비싸 별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이 회사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사용한 스마트폰을 처음 내놓으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SK텔레콤은 티맵을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자사(自社) 스마트폰 가입자에게 제공했는데, 당시 42만 명이던 사용자는 올해 10월 말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월 1만8000원에 이르던 이용료는 월 4만5000원인 스마트폰 통화료에 포함됐다. 통화료가 경쟁사와 동일했기 때문에 SK텔레콤 가입자들은 티맵을 무료라고 느꼈다. 지금 이 서비스는 SK텔레콤에서 분사한 SK플래닛이 운영한다.

티맵은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을 개척했던 팅크웨어와 파인디지털 등 내비게이션 전문 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은 그동안의 급성장세가 꺾이고 올해 처음 판매대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국내 자동차업계 1위인 현대자동차는 2005년 내비게이션 전문 업체 엠엔소프트를 인수하고 최근 관계사인 유비벨록스를 통해 팅크웨어도 인수했다. 결국 티맵을 운영하는 SK플래닛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됐다.

티맵은 통신망을 이용한 실시간 길안내 서비스가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따라서 내비게이션 업계가 티맵과 경쟁하려면 통신서비스와 결합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때 통신업체인 KT가 전략적으로 SK플래닛과 다른 길을 선택하고 나섰다. 내비게이션 업계와 경쟁하는 대신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KT는 28일 팅크웨어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팅크웨어의 아이나비 내비게이션 단말기에서 KT의 ‘올레마켓’이라는 앱스토어를 이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KT도 SK플래닛처럼 ‘올레내비’라는 자체 무료 내비게이션 스마트폰 앱이 있지만 티맵을 따라가지 못했다.

올레마켓과 올레내비 사업을 총괄하는 KT 안태효 스마트에코본부장은 “팅크웨어와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다양한 단말기를 통해 올레마켓의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내비게이션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카’ 사업을 꿈꾸는 자동차업체나 내비게이션 전문업체 둘 다 통신기능이 꼭 필요한데 현재의 가장 큰 경쟁업체로 꼽히는 SK텔레콤 계열사와 손을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종 업계의 합종연횡은 소비자에게는 자동차가 개인 통신서비스의 허브가 되는 ‘스마트카’ 시대를 앞당기고 스마트폰을 통한 서비스의 수준도 발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최근 판매되는 차량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블루투스 통신기능으로 스마트폰에 담긴 음악을 재생하거나 전화를 하고 주소록을 공유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스마트폰과 자동차의 결합이 강화되면 차량이 ‘움직이는 사무실’ 역할을 하는 것도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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