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대표의 ‘나의 창업 이야기’… “이해진 송재경 나성균… 좋은 인연이 넥슨 키웠다”

■ KAIST 강의 김정주 대표의 ‘나의 창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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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끝나갈 때 김정주 넥슨 창업자 겸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가 동영상을 틀었다. 미국의 유명 색소폰 연주자 케니 G의 공연 실황이었다. 하지만 색소폰 연주는 단 한 소절도 나오지 않았다. 케니 G가 자신의 공연을 도와준 밴드 멤버를 소개하는 내용뿐이었다.

김 대표가 물었다. “내가 왜 이 영상을 보여주는지 알아요? 맞혀 보세요.”

케니 G의 멤버 소개는 10분 동안 이어졌다. 지루할 정도로.

16일 대전 KAIST에 내려갔다. 김 대표의 수업을 참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2일 김 대표의 수업을 현장 취재해 쓴 기사를 본 김 대표는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 제안했다. “교수 흉내를 내느라 교수인 척하고 남들 이야기로 버텨 왔는데 ‘나의 창업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학생들의) 선배로서 제 개인 이야기를 할 테니 시간을 내주세요.”

▶본보 4일자 B2면 경험 담아 툭 터놓고 창업 토론…

○ KAIST에서 맺은 인연

김정주 NXC 대표는 16일 대전 KAIST에서 학생들에게 ‘나의 창업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대전=송인광 기자 light@donga.com

케니 G 동영상에서 그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었다. 김 대표는 케니 G가 소개하는 멤버들을 가리키며 “20년 이상 호흡을 맞춘 팀”이라고 했다.

“사람이라면 성공할수록 실력이 더 좋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만 결국 오랫동안 다투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하게 마련입니다. 기술이 좋은 사람은 어디든 ‘컴포넌트’(부품)로 들어오지만 그 역할이 끝나면 없어도 되는 사람이죠.”

김 대표의 창업 이야기는 사람들과의 인연 얘기였다. 넥슨의 창업은 1994년 12월이지만 시작은 1991년 그가 KAIST에 입학하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의 룸메이트는 이해진 NHN 창업자였다. 두 사람은 지금도 막역한 친구다. 대주주 보유 지분이 적어 지배구조가 취약한 NHN의 경영권 방어를 김 대표가 도와준 적도 있을 정도다.

오늘날 넥슨을 있게 한 첫 게임 ‘바람의 나라’ 역시 KAIST 친구였던 송재경 현 XL게임즈 대표와 함께 만들었다. 네오위즈를 창업한 나성균 대표도 KAIST에서 함께 고민하고, 사업도 함께 궁리했던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를 이끌어가는 젊은 리더들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만났다고 쉽게 성공할 리는 없다. 넥슨을 창업한 김 대표에겐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었다. “게임 만들 돈이 어디서 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김 대표는 “돈이 없어 그냥 컴퓨터 놓고 방에서 뚝딱뚝딱 만들었다”고 말한다. 차고에서 창업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가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은 사람뿐이었다.

결국 성공의 계단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에서 비롯됐다. 김 대표가 병역특례로 일했던 대덕전자에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자회사 사무실 빈 공간을 헐값에 빌려 줬던 것이다. 그게 넥슨의 시작이었다. 김 대표는 “사업 초기 방세 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너무 커 요즘도 젊은 친구들이 창업한다면 내가 적어도 사무실은 싼값에 빌려 준다”고 했다.　　
○ 서로를 믿는 동료들

넥슨의 첫 게임 ‘바람의 나라’는 1996년 4월 처음으로 돈을 받기 시작했다. 1분을 즐기려면 20원을 내야 했기 때문에 하루 10시간 게임을 하면 한 달에 36만 원이 드는 값비싼 오락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열광했다. 매출은 1997년 12억 원, 1998년 18억 원으로 올랐다. 마침 전국에 PC방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덕에 넥슨의 매출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1999년에는 매출이 1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넥슨의 매출은 자회사를 합한 연결 기준으로 봤을 때 9343억 원에 이른다.

이런 성공의 비결도 사람이었다. KAIST 출신의 친구들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인터넷과 온라인게임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일으켜 온 동료들이었다. 넥슨을 통해 만나게 된 직원들은 가족과 같았다. 그는 다음 달 14일로 예정된 넥슨의 일본 증시 상장에 대해 “굉장히 망설였던 결정인데 함께 일해 온 사람들이 용기를 북돋워 줬다”며 “그들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의를 마치며 그도 케니 G처럼 사람들을 소개했다. 화면에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승우 넥슨재팬 대표, 서민 넥슨 대표, 다니엘 김 넥슨아메리카 대표, 한경택 넥슨 최고재무책임자(CFO)…. 긴 시간을 함께해 온 그의 팀이었다.

대전=송인광 기자 l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