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블랙아웃 두 달… 겨울전력도 비상]<上>지경부 ‘편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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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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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수급 장기대책이 ‘조직 신설’- 행정력 동원 강제절전

2012년 8월. 오전부터 섭씨 30도를 넘어가면서 전국에서 전력수요가 폭증하자 여수화학단지 내의 석유화학기업인 A사는 ‘현재 전력사용량이 평소보다 10% 많으니 오후 2∼3시에는 사용량을 줄여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예비전력이 400만 kW까지 떨어지는 ‘관심’ 단계에 들어서자 실시간계량기로 A사의 전력사용 현황을 지켜보던 한국전력공사가 긴급 협조문을 보낸 것이다.

15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지식경제부의 ‘장기전력수급 개선 대책 초안’에 따르면 이런 상황이 내년 여름부터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소비자 정보를 공적자원화하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한 뒤 일정 규모 이상의 소비자(산업체)에 대해 실시간계량기를 설치해 한전과 한국전력거래소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수요예측센터를 설립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발전소를 짓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제’ 도입 등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번 장기대책도 ‘전력 요금 현실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미봉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조직 신설’이 장기 대책?


서울대 이승훈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전력위기 대응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가 9·15 정전사태의 최종 보고서로 준비 중인 장기전력수급 개선안에는 별도의 조직으로 ‘수요예측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기존 전력거래소의 수요예측팀만으로는 급변하는 수요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안대로 별도의 조직을 만들더라도 예측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정부TF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수요 예측을 전담하는 인력이 늘면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옥상옥(屋上屋)’을 만드는 것”이라며 “전력거래소의 인력시스템을 개편하고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측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국회가 전력거래소의 전력수급조절(SO) 기능을 한전으로 재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정부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한전의 송배전(TO) 기능을 분리해 별도의 공기업을 설립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정부는 발전소를 건설할 때에 필요한 환경영향 평가를 최소화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도 축소하는 패스트트랙 제도의 도입도 검토 중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중앙정부가 발전소의 건립 절차를 간소화해 달라고 요청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전국에서 화력발전소 유치를 둘러싸고 환경단체 및 주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이 제도가 도입되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 ‘행정력 동원’ 규제에 한계


이에 앞서 지경부가 10일 발표한 겨울철 전력 수급안도 일시적인 대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대책의 핵심은 민간 부문을 강제로 절전시켜 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해 전력 피크시간대 전기를 쓰지 않는 기업에 요금 인센티브를 주던 기존의 수요관리제와 달리 의무 감축량을 부과했다. 최대전력 1000kW 이상 사용 산업체는 12월 5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전력을 지난해 대비 10% 의무 감축해야 하고 위반 시 최대 3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정부의 강제 절전 대책에 대해 회의적이다. 정부는 조업시간을 조정하거나 휴일근무를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면 된다고 판단하지만 기업들은 기존 생산 계획을 변경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요금체계 개편 공감대 끌어내야


전력산업 전문가들은 9·15 정전사태 이후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이 근본적인 해결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전기 요금을 올려 수요를 줄이거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수면 아래로 들어간 원자력 발전을 늘려 값싼 전기를 확보하겠다는 대책은 모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전력난의 근본대책이 산업체와 국민에게 적절한 가격 신호를 주는 것이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로 고통 받는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요인이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책 당국자들도 외면하는 것이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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