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값 상승에 서울 강남 인구감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7일 19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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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명시에 사는 김모 씨(41·여)는 몇 년 동안 준비했던 '강남 입성' 계획을 연기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전세를 구할 생각이었지만 전세 값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박사급 연구원인 남편과 회사원인 김 씨의 소득은 세금을 떼고 월 800만 원 정도고 현재 살고 있는 40평형대 아파트는 시가 7억 원 안팎이다. 목표로 한 30평형대 대치동 아파트 전세 값도 최근 1년간 2억 원이나 올라 7억 원에 이르렀다. 지금 사는 아파트를 전세를 주고도 3억 원 이상 대출받아야 한다. 김 씨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전세 값이 너무 올라 강남 이사는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세 값을 감당못해 강남을 떠나야하는 '전세 유민'들도 적지 않다.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주부 한모 씨(37)는 지난해 말 서초구 양재동에서 경기 성남시로 이사했다. 강남구로 출퇴근하는 남편 때문에 6년째 서초구에서 전세를 살았지만 치솟은 전세값에 두손을 들고 말았다. 한 씨는 "아이는 커 가는데 더 빚을 냈다가는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2009년부터 급등하고 있는 전세값 영향으로 현대판 '맹모삼천지교'인 강남 이주 현상이 퇴색하고 있다. 특히 줄곧 늘기만 하던 '강남 3구(서울 강남·서초·송파구)'의 인구가 지난해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서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전세대란'이 '사(私)교육 특구'인 강남으로 이주하려던 학부모들의 교육열에도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맹모삼천지교' 누른 전세대란

통계청에 따르면 올 1~9월 서울의 인구는 7만8005명 감소했다. 서울의 인구는 주변 신도시 개발로 2000년대 들어 매년 3만~5만 명 감소하다가 지난해에는 11만5023명 급감하는 등 인구이탈의 강도가 확대되고 있다.

꾸준히 인구가 늘던 '사교육의 메카' 강남 3구 역시 인구 감소세로 돌아섰다. 송파구는 올 1~9월 4827명, 강남구는 같은 기간 3156명의 인구가 줄었다. 2009년 인구가 1만6699명 늘어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인구 증가를 보인 서초구는 지난해 332명이 감소한데 이어 올해 1~9월 이미 지난해의 10배가 넘는 3659명이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서울과 강남을 등지고 있는 것은 전세 값 급등이 가장 큰 이유다. 특히 강남 3구의 전세 값은 2009년 18.3%, 지난해 10.3% 급등하면서 3.3m²당 전세값이 평균 1032만 원으로 사상 처음 1000만 원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강남 3구는 초중고생의 전입마저 크게 줄고 있다. 강남 3구의 초중고 전입생은 2008년 1만4079명에서 지난해 1만360명으로 36%나 감소했다. 실제로 자녀를 위해 대치동에 전세를 얻는 부모를 뜻하는 '대전(대치동 전세)동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던 대치동의 한 초등학교는 전입생이 2008년 385명에서 지난해 196명으로 줄었다.

이 학교는 매년 5, 6학년 전학생만 200명 안팎이 몰려오면서 1~3학년은 5개 학급, 5학년은 11개, 6학년은 13개 학급을 운영했다. 하지만 최근 전학생이 급감하면서 6학년 학급당 36명을 넘던 학생수가 지난해에는 28명으로 줄어 학급 편성기준(29명)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이 학교 관계자는 "보통 여름방학 때면 100명 넘게 전학을 오는데 지난해부터 전학생이 많이 줄었다"며 "특목고가 생기면서 대치동의 매력이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른 전세 값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 탈출 가속화

전세대란이 장기화되면서 주거비와 생활비 상승 부담을 견디지 못한 30대 신혼부부나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의 강남 이탈도 크게 늘고 있다.

2009년 결혼 후 전셋집을 얻었던 김모 씨(32·여) 부부도 올 초 전세 값 때문에 경기 구리시로 이사했다. 2년 전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 구했던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의 전세 값은 3억2000만 원이었지만 집주인은 재계약 조건으로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200만 원을 제시했다. 전세 값으로 환산하면 40% 가량 오른 셈이다.

20년째 송파구에 살고 있던 최모 씨(66)도 지난해 경기 용인시로 거주지를 옮겼다. 6년 전 결혼한 아들 부부가 오른 전세 값에 대출금이 불어나자 자신이 살던 집을 아들에게 내주고 이사한 것. 최 씨는 "은퇴한 뒤 강남에 계속 살려다보니 타 지역보다 높은 생활비가 부담이 된다"며 "아들 부부가 빚을 다 갚더라도 강남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3구에서 30대 인구는 6465명이 감소해 강남 3구 전체 인구 감소의 45%를 차지했다. 강남 3구의 30대 인구는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4000명 이상 늘었다. 60대 이상 인구 역시 지난해 4098명 감소했다.

조은상 닥터아파트 리서치연구소 팀장은 "30대 인구의 감소는 2008년 강남 전세 값이 하락했을 때 유입하던 신혼부부 등이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울 외곽으로 이동한데 따른 것"이라며 "60대 이상도 은퇴후 생활비를 줄여야 할 필요에 따라 강남을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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