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등기이사 4931명 중 총수일가 418명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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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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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은 행사, 책임은 회피”… 공정위, 43개 기업 조사

삼성그룹에는 71개 계열사에 327명의 등기이사가 있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포함한 가족과 친지 가운데 등기이사로 등재된 사람은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 유일하다. 그룹의 오너 일가가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등재되기를 꺼리는 것은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다. 등기이사를 맡지 않으면 경영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경우라도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집단의 총수와 일가 중 8.5%만 법적 책임을 진 등기이사로 등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총수 일가의 ‘황제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들의 경영 견제 활동이 여전히 저조한 것으로 분석됐다.

○ 대기업 총수 일가 등기이사 회피


6일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배구조현황’에 따르면 올 4월 현재 43개 대기업집단의 전체 등기이사 4913명 가운데 총수 일가는 418명(8.5%)에 그쳤다. 지난해 첫 조사에서 45개사, 4736명의 등기이사 중 425명(9%)이 총수 일가였던 것에 비해 소폭 감소했다.

총수(최대주주)가 계열사 중 단 1곳에도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대기업은 삼성과 현대중공업, 두산, LS, 신세계, 대림 등 6곳이었다. 특히 삼성은 71개 계열사 이사 327명 가운데 이부진 사장만 등기이사로 등재돼 총수 일가 등기이사 비중이 0.31%로 가장 낮았다. 삼성은 2008년 이건희 회장이 모든 공식 직위에서 사퇴한 뒤 올 초까지 총수 일가 등기이사가 한 명도 없었다. 삼성에 이어 LG는 243명의 등기이사 가운데 총수 일가가 5명(2.06%)으로 총수 일가 등기이사 비중이 두 번째로 낮았다. 대한전선(2.30%), 동부(2.76%)가 그 뒤를 이었다.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장단기 사업계획과 주요 투자, 임원 인사 등 회사의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총수 일가는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하고 이사회 밖에서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8년 기업이 부실화됐을 때 소액주주나 채권단이 대기업 총수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실상 이사제도’가 도입됐지만 소액주주나 채권단이 총수의 업무 지시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제도가 활용된 사례는 아직까지 한 차례도 없다.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철강회사가 주축인 세아그룹으로 등기이사 80명 중 23명(28.75%)이 총수 일가였다. 10대 그룹에서는 한진(20%)이 가장 높았고, 이어 GS(15%), 롯데(13.58%) 순이었다.

○ 사외이사 반대로 부결 안건 0.05%뿐


총수 일가의 독단적인 경영을 감시하기 위한 사외이사들의 활동도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43개 대기업 상장 계열사의 사외이사 수는 631명으로 전체 이사의 47.5%를 차지했다. 지난해 시가총액 상위 100위 안에 든 79개 대기업 계열사의 이사회 운영 현황을 보면 이사회 상정 안건 2020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1건(0.05%)에 불과했다. 1건의 부결도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기 전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소유했던 현대건설에서 이뤄졌을 뿐 총수가 있는 대기업에서는 상정된 안건이 모두 가결됐다.

총수 일가의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 내 각종 위원회 설치도 저조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거래를 심사하고 승인하는 역할을 맞는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한 기업은 10.6%에 불과했다. 이 밖에 소액주주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집중투표제와 서민투표제를 도입한 대기업은 각각 3.7%, 11.5%에 그쳤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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