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 거래소 이사장 “본계약 앞두고 호텔방에서 108배 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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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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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왼쪽)과 압두 카키모프 우즈베키스탄 국유재산위원장이 한국 증시시스템을 수출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왼쪽)과 압두 카키모프 우즈베키스탄 국유재산위원장이 한국 증시시스템을 수출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남의 나라 경제혈관을 장악하는 게 쉽겠습니까. 23일 본계약 직전 호텔방에서 혼자 108배를 두 번이나 올리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58)은 23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한국형 주식거래 시스템을 이 나라에 수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직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일 남짓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머무르며 연쇄 계약을 체결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김 이사장의 얼굴에서 피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동남아시아에 이어 중앙아시아에 한국형 증시시스템을 구축하려던 노력이 결실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부터 우즈베키스탄에 한국거래소의 주식거래 관련 정보기술(IT)시스템을 수출하기 위해 세 번이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본계약을 앞둔 전날 밤까지도 막판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108배라도 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안했다고 털어놨다. 시스템 수출과 함께 각종 법률 컨설팅을 제공하기로 하고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김 이사장은 계약 성공 요인으로 ‘감성적 접근’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 ‘거래소 장학생’으로 학업을 마친 우즈베키스탄 관료들의 힘이 컸다”며 “그들은 한국문화를 체험하며 친한파가 됐다”고 말했다. 올 1월 라오스 거래소에서 한국 증시시스템을 가동할 때도 감성이 키워드였다. 당시 한국거래소 직원들은 동아대 의료진 30명과 함께 라오스를 찾아 현지 주민 수천 명을 진료하도록 주선했다. 이후 라오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주식거래 시스템 수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국거래소는 앞으로도 진출 예정 국가의 공무원을 한국으로 불러 증권교육을 하고 현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세계의 대형 거래소들이 서로 합치고 지분을 나누면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며 “민영화가 어려운 한국거래소 처지에서는 미리 ‘금융 영토’를 늘려두는 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형 증시시스템을 수출하면 국내 기업들의 현지 상장이 수월해지고 한국 투자자들도 다양한 해외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시스템을 깔아 놓은 나라에서는 국내 증권사들도 활동하기 쉽다. 덤으로 해외 투자를 앞둔 한국 기업들이 현지 기업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김 이사장은 아시아를 넘어 동유럽과 아프리카, 남미 시장까지 주목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2, 3개국과 추가 수출 계약을 앞두고 있으며 미얀마 아제르바이잔 등과도 협상을 하고 있다. 최근 중국거래소의 기세가 무섭다고 강조한 그는 “앞으로 5년간 30개국에 한국 증시시스템을 구축해 세계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것”이라고 말했다.

타슈켄트=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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