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과일의 한숨… “이 시퍼런 사과를 누가 차례용으로 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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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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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 사과밭 - 음성 배밭 가보니

18일 충북 충주시의 사과농민 이종성 씨가 추석을 앞두고도 여전히 초록색인 사과밭을 가리키며 애를 태우고 있다. 날이 화창했던 이날, 그는 인부들을 고용해 3만3000㎡(약 1만 평) 땅 위에 심어진 사과나무의 사과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고 있었다. 그는 “사과 알 주변의 잎을 따줘야 햇볕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충주=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18일 충북 충주시의 사과농민 이종성 씨가 추석을 앞두고도 여전히 초록색인 사과밭을 가리키며 애를 태우고 있다. 날이 화창했던 이날, 그는 인부들을 고용해 3만3000㎡(약 1만 평) 땅 위에 심어진 사과나무의 사과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고 있었다. 그는 “사과 알 주변의 잎을 따줘야 햇볕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충주=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추석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사과 색깔 좀 봐요. 이렇게 깔이 하나도 안 나왔는데(색깔이 빨갛지 않은데) 절반이나 출하할 수 있겠냐고요. 예년 같으면 추석 때 90% 이상 나갔을 사과인데, 올해는 50%나 내놓을 수 있을지…. 사과 농사 37년째에 이렇게 힘든 해는 처음입니다.”

18일 충북 충주에서 만난 사과 재배 농민 이종성 씨 얘기다. 다음 달 12일 추석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례상 과일인 사과와 배 작황을 알아보기 위해 충북 충주와 음성 지역을 찾았다. 두 지역은 품질 좋은 사과, 배가 생산되기로 이름난 지역이다. 농민들은 유난히 나쁜 작황에 애를 태우고 있었다.

○ ‘초록 사과’에 애타는 농심(農心)

이날은 정말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해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었지만 농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올여름 계속해서 내린 비에 병든 과일이 많은 데다 그나마 병들지 않은 과일도 한결같이 크기가 작고 제대로 익지 않아서다.

이 씨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해를 본 게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농사꾼들한테 올해는 정말 최악입니다. 6월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해가 제대로 난 건 8일 정도뿐이었어요.”

올여름 사과 농가들은 방제만 하다가 한 계절을 다 보냈다. 끊임없이 비가 오는 습한 날씨 탓에 과수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졌는데, 농약을 치고 나면 또 비가 오고, 다시 치고 나면 또 비가 와 이 씨의 경우 농약 값과 자재비만 다른 해보다 30% 더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해를 볼 수 없으니 열매도 잘 안 열리고 크기도 안 크다”며 “정부와 언론에서는 자꾸 과일 값이 비싸다는 얘기만 하는데 농민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시세가 올라도 올해는 양이 안 나와서 적자가 날 판”이라고 말했다.

농민들이 그나마 제값을 받고 과일을 팔려면 추석 전에 사과를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사과색이 전부 초록색인 게 문제다. “제사상에 올려야 하는데 누가 초록 사과를 사겠어요? 올해는 추석이 지난해보다 열흘이나 빠른 데다, 올봄에 날씨가 추워서 개화까지 열흘 이상 늦어지다 보니 과일이 익을 시간이 없었어요.”

매년 추석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최고 값을 받을 정도로 충주에서 사과 농사를 잘 짓는 농민 박한규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박 씨 역시 “올해는 아무래도 추석 직전 4, 5일 정도만 반짝 팔고 그 전엔 사과를 못 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 씨와 박 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들 농장 주변의 다른 사과 농장 중에는 병이 들고 사과나무 잎이 다 떨어져 사실상 폐농 상태인 농장들도 많았다. 충북원예농협 이상복 과장은 “예전에는 날씨가 안 좋아도 농사를 잘 짓는 상위 30% 농가들은 피해가 없었는데 올해는 10% 정도만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 배밭은 전염병 창궐

이번에는 음성으로 가 배 농장을 둘러봤다. 배는 사과보다 작황이 더 나빴다. 곳곳에 사실상 농사를 포기한 배 밭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배와 배나무 잎이 검게 변하는 과수 전염병에 걸린 밭이었다.

음성에서 배 농사를 짓는 원희성 씨는 쉬지 않고 방제해 다행히 큰 전염병은 피했다. 하지만 그 역시 수확량이 확 줄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원 씨는 “개수도 안 나오고, 크기도 자잘하고, 병든 과수도 많아 올 추석엔 평년의 절반밖에 출하를 못할 것 같다”며 “방제도 열심히 하고 성장 촉진제도 줘 봤지만 비가 계속 쏟아지니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보여준 배는 배가 아니라 작은 감 크기였다. 이맘때쯤이면 배를 감싸는 종이봉지가 탱탱하게 차올라야 하는데, 그런 배는 나무 한 그루에 몇 알 되지 않았다. 원 씨는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종이봉지를 벗겨보면 병과(病果)인 게 많다”며 “안성에서 배 농사를 짓는 지인도 전염병 피해를 보아 생산량이 5분의 1로 줄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은 정부의 물가대책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충주 지역의 한 사과 재배 농민은 “정부가 여름에 나오는 아오리 사과 500t을 미리 수매했다가 추석 때 방출하는 걸 물가 대책이라고 내놨던데 웃기는 일”이라며 “아오리는 저장성이 없어 일주일만 지나도 퍼석해서 못 먹는데 이런 게 돌면 사과에 대한 소비자 인식만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농민은 “명절 다 지나고 수요가 적을 때 사과 배가 한꺼번에 출하될 게 뻔한데 정부는 값 폭락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이 농민은 “올봄에 45개에 2만 원을 받고 유통업체에 물건을 납품했는데 마트에 가니 3개 묶음 사과가 7000원이더라”며 “물가 상승의 진짜 문제인 유통구조는 그대로 두고 농민들만 쥐어짜는 정부가 야속하다”고 말했다.

충주·음성=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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