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임차시장, 외국인이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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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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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체류 외국인 126만 명 넘어서

서울역 앞에 들어설 주상복합아파트를 분양하는 동부건설의 본보기집(모델하우스)에는 ‘월세 500만 원 외국인 임대’ ‘서울역에서 짐 부치고 공항 간다’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과 광고판이 곳곳에 걸려 있다. 상담원이 앉은 자리에는 외국인 임대 전문 부동산중개업소의 홍보물도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아파트 홍보 전단과 인터넷 광고에 ‘외국인 선호 평면’ ‘외국인 수요 고려한 빌트인 가전 설치’를 강조했다.

이 회사 김한수 분양팀장은 “계약자 10명 가운데 6명이 외국인을 상대로 임대사업을 경험했고, 직접 구매 의사를 밝힌 외국인도 있다”며 “주요 마케팅 타깃을 외국인 상대 임대사업자로 잡고 외국인이 살기 좋다는 장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서울 한남동 이태원 일대 고급 단독주택 대신 신규 주상복합아파트를 찾는 외국인이 늘면서 서울 용산 일대에서 주상복합아파트를 분양 중이거나 분양을 앞둔 건설사들은 이처럼 ‘외국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외국인 임대’가 분양 성패를 가르는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 외국인, 부동산 시세 움직인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6만 명을 넘어서면서 외국인이 국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특히 임차시장에서 외국인은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이 됐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 동안 대표적 외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영등포구(14.5%)와 구로구(14.8%)의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같은 기간 서울시 평균 상승률(13.8%)을 웃돌았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14.0%)와 화성시(29.3%)도 같은 기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고, 경남 김해시는 무려 40.7%가 폭등했다. 김해시 한빛공인중개사사무소 전호철 사장은 “매물이 많이 부족한데 외국인이 늘면서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차지하고, 내국인이 주변의 다른 곳에서 전세를 찾다 보니 전세금 상승세가 더 가팔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 대부분 아파트보다 임대료가 낮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에 몰리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 주택의 전월세 상승률은 훨씬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세종공인중개사사무소 김성희 사장은 “단칸방 기준으로 다세대주택의 월세가 보증금 300만 원에 15만 원에서 최근 30만 원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이 지역들은 외국인 수 변화에 따라 값이 급락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중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2000년대 중반부터 외국인 근로자 유입에 따라 줄곧 전세금 변동률이 서울시 평균보다 높았다. 그런데 정부가 중국동포 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한 2009년 상승률이 1%대에 머물며 서울시 평균치(12%)를 크게 밑돌았다.

○ ‘신상권’ 생겼다

임차시장뿐만 아니라 분양시장에서도 외국인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부산이나 인천 송도국제도시 등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안전가옥’을 찾는 일본인들의 부동산 투자 및 매입 문의가 늘고 있다. 또 국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중대형 주상복합아파트와 고급빌라들은 실수요자 대신 외국인 임대를 염두에 둔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외국인 대상 부동산중개업체에는 외국인에게 임대하기 원하는 고급주택 소유주들의 문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용산 일대에서 외국인 상대 임대 중개를 하는 제임스 박 씨는 “고가 주상복합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외국인에게 세를 놓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상권도 활성화됐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봉천동) 금천구(가산·독산동) 영등포구(대림·신길동) 중 외국인이 밀집해 거주하는 지역의 상가 매매가는 2007년부터 3년간 평균 11.4∼34.2% 상승해 서울 평균치(7.9%)는 물론이고 강남구(9.5%)를 크게 웃돌았다.

일부 외국인 밀집지역은 죽어가는 재래시장과 지역 상권을 살리는 효자 노릇도 한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는 ‘양꼬치 거리’라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주변의 조양시장과 노룬산시장 등 재래시장들도 함께 살아나고 있다. 용산구 이태원 상권은 인근 해방촌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인다. 3년 전부터 해방촌에서 스낵바를 운영하는 이경선 씨는 “손님의 90%가 외국인이며 한국인도 많아졌다”면서 “최근에는 이 지역의 낡은 상가가 카페나 술집으로 바뀌는 일이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 “외국인이 도시를 바꾼다”

외국인 밀집지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어학원 강사나 유학 목적으로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이 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외국인 밀집지역이 형성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태원, 강남 등과 가깝지만 임대료가 저렴한 해방촌과 낙성대도 새로운 외국인 주거지로 ‘뜨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절대다수인 중국인 밀집지역도 다양해져서 서울 영등포구 등 기존 밀집지역 외에 광진구, 동작구, 동대문구에도 중국인 유입인구가 늘었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의 문민 연구원은 “과거에는 조선족이 절대다수였지만 요 근래는 자금력이 있는 한족이 급증하면서 새로운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기 직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30년까지 3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외국인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후석 명지전문대 부동산경영학과 교수는 “지금은 월세에 살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지만 앞으론 정착하는 인구도 늘어나 매매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사장도 “한국의 산업구조가 지식서비스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화이트칼라 외국인의 진입이 늘어나고 장기적으론 고급주택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의 유입이 도시의 질적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있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 밀집지역 슬럼화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이 퇴락한 지역에 들어와 특색 있는 문화를 만들고 오히려 지역 상권을 살린 경우가 많다”면서 “외국인 유입으로 도시의 혼종성(hybridity), 다양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염유섭 인턴기자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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