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매각, 사실상 무산…보고펀드-티스톤 불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7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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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 매각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정부가 애초부터 민영화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유(國有)은행인 우리금융을 사모펀드에 파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규정을 지켰다'고 변명하기 위해 형식적인 입찰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17일 우리금융 매각 입찰을 한 결과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1곳만이 제안서를 냈다고 밝혔다. 2곳 이상이 입찰에 참여하는 '유효경쟁' 원칙에 위배돼 입찰은 유찰됐다. 법적으로는 MBK파트너스와 수의계약을 할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다. 우리금융 인수에 관심을 보인 다른 사모펀드인 티스톤파트너스와 보고펀드는 최근 금융시장 불안으로 우리금융의 성장에 도움을 줄 만한 전략적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데다 인수자금 조성액도 당초 기대에 못 미쳐 입찰서를 내지 못했다.

금융계에서는 정부가 2001년 3월 부실이 심했던 한일 상업 평화 광주 경남은행을 합쳐 우리금융을 설립한 뒤 줄곧 민영화 의지를 피력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구미에 맞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지금의 국유은행 체제를 유지하길 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07년 11월 당시 재정경제부가 우리금융 민영화시한을 담은 금융지주회사법 부칙 6조를 삭제한 개정법을 입법예고하고 2008년 3월 이를 확정하면서 민영화 속도가 느려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매각시한은 없어진 반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원칙은 그대로 남아 정부로선 주가 수준에 따라 매각시기를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우리금융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분을 쪼개 팔 때마다 '혹시 나중에 주가가 더 오르면 감사를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생겨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계에는 5월 다른 금융지주회사가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있도록 최소 지분 인수한도를 현행 '95%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완화해주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민영화작업이 이미 중단됐다고 본다. 자금력 있는 금융지주회사가 주체가 돼 우리금융을 인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모펀드만 대상으로 한 입찰은 일종의 '면피 행정'이라는 지적이다. 우리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과거 하나은행이 미국의 소규모 은행을 인수하려 할 때 미국 정부가 하나은행 대주주가 싱가포르 국부펀드라며 제동을 걸었다"며 "신뢰도가 높은 국부펀드가 작은 은행을 사는 것도 안 되는데 사모펀드가 큰 은행을 인수하는 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상당 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회사를 배제한 현행 법 체계를 정비해 매각을 재추진하려면 여론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새 틀을 짜기가 쉽지 않다.

지금이라도 우리금융 지분 매각방식을 다양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입찰 무산 직후 연기금, 각종 공제회, 국부펀드 등 잠재적 투자자집단을 지정한 뒤 이들이 참여하는 경쟁 입찰을 통해 우리금융 지분을 분산 매각해 과점적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방식이 부각되고 있다. 2003년 말 정부가 갖고 있던 국민은행 주식을 팔 때 적용한 '지명식 경쟁입찰' 방식로 한 회사가 우리금융 지분을 통째로 사기 힘든 점을 감안한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공적자금 회수라는 재정적 목표와 은행업 발전이라는 금융 정책적 목표가 충돌하는 상황"이라며 "매각 후 주가가 급등하면 차익을 공적자금으로 환수하는 식의 보완책을 두고 민영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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