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질낮은 일본산 수입하려 환경기준 낮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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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기름값 인하명목 관련법령 개정 움직임에 반발
업계 “국내기업 역차별… 녹색성장 방침에도 역행”

“환경보호를 위해 품질기준을 높이려고 큰돈을 들여 시설투자를 했는데 정부한테 ‘뒤통수’를 맞은 기분입니다.”(정유사 관계자)

정부가 일본에서 휘발유 등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환경 관련 품질기준을 낮추려고 하자 국내 정유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에는 높은 기준을 제시하며 이를 따르도록 유도했던 정부가 외국 제품을 사오기 위해 관련 법령을 바꾸겠다고 하니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

12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식경제부는 일본 석유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관련 기준을 바꾸는 방안을 환경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정부는 일본산 휘발유와 경유는 벤젠과 올레핀 함량 등 일부 기준만 낮추면 수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나 대만 등 다른 인접 국가는 우리나라에 비해 현저하게 품질 기준이 낮아 수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이에 대해 정부가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정유업계는 옥탄가를 높이기 위해 1990년대부터 휘발유 제조 과정에서 MTBE라는 첨가제를 넣고 있다. MTBE는 초기 시설투자에만 1000억 원 이상이 드는 데다 값 비싼 메탄올을 원료로 해 원가가 비싸다. 그래도 정유사들이 MTBE를 쓰는 것은 국내 품질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군소 정유공장이 많은 일본은 마진을 높이기 위해 MTBE를 거의 섞지 않는다. 이는 일본의 석유제품 품질기준이 대부분의 항목에서 우리보다 낮기 때문에 가능하다. 국내 정유업계는 까다로운 품질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비싼 제조원가를 감수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석유제품에 대한 환경기준 완화가 정부의 ‘녹색성장’ 방침에도 역행한다고 지적한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당시 외국 제품을 수입해 기름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휘발유 품질기준을 낮추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가 △대기 오염물질 배출 증가 △자동차 부품 손상 △국내 정유사에 대한 역차별 등을 이유로 반대해 무산됐다. 정유업계는 “명분도 없이 3년 만에 결론을 뒤집는다면 정부 스스로 정책에 대한 신뢰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유업계는 일본 석유제품이 수입되더라도 국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일본의 휘발유 공급가격(세전 기준)은 8일 현재 L당 1217원이다. 이는 8월 첫째 주 국내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격인 L당 918원보다 300원 가까이 비싸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일본산 휘발유를 싸게 팔려면 결국 보조금을 주거나 세금을 깎아줄 수밖에 없다”며 “환경기준까지 낮춰가며 굳이 질 나쁜 외국 기름을 들여오려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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