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3위 추락… “일자리 감소 현실로” 핀란드가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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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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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기 스마트폰 판매량 애플-삼성에 밀려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핀란드의 대표 기업 노키아가 결국 ‘왕좌’에서 물러났다. 2002년부터 10년간 분기별로 지켜온 스마트폰 1위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다. 노키아는 21일(현지 시간) 2분기(4∼6월) 동안 스마트폰 1670만 대를 팔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4% 떨어진 수치다. 반면 2분기 순익이 7조7486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애플은 아이폰 판매량이 2030만 대에 이른다.

노키아는 애플에 이어 삼성전자에도 뒤진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 약 1800만 대를 판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정상에 있다가 순식간에 3위로 곤두박질치게 됐다.

정보기술(IT)의 큰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노키아의 추락은 여러모로 시사점을 안겨준다. 한 기업의 몰락이 국가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매출액이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28.4%에서 23.5%로 줄었다. 국가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한 노키아가 흔들리면서 핀란드 경제 전체까지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 1위 자만심이 노키아의 위기 불렀다

노키아의 2분기 실적은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145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븐 엘롭 씨를 영입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2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노키아그룹의 휴대전화 부문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 9808억 원이었지만 올해 2분기에는 3744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맥없이 추락하는 노키아를 보는 국내 휴대전화 업계는 ‘격세지감’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휴대전화 해외영업 담당자는 “노키아는 한때 신화 그 자체였다”며 “세계 각지에서 좋은 부품을 싸게 사들이는 노키아의 ‘공급망 관리’ 모델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었다. 저가 휴대전화를 팔아도 이익을 남기는 엄청난 회사였다”고 말했다.

‘애니콜 신화’를 쓴 삼성전자도 노키아를 넘는 게 한때는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하지만 IDC 등 시장조사기관들은 삼성전자가 올해 노키아를 밀어내고 휴대전화 1위 자리에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노키아의 몰락은 ‘1위의 자만심’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노키아는 1996년에 벌써 e메일을 보낼 수 있는 초기 형태의 스마트폰 ‘커뮤니케이터’를 내놓았고, 1998년에 운영체제(OS) 심비안을 내놓을 만큼 혁신적인 기업이었다. 강점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경영학의 원칙에 충실했다. 하지만 애플이 나왔고, 세상이 변했다. 눈 깜짝할 사이 경영학의 원칙도, 노키아의 성공 법칙도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 됐다. 2위 삼성전자는 노키아 방식이 쓸모없어졌음을 빠르게 간파해, 과감히 자체 OS 바다를 버리고 구글과 손잡을 수 있었다. 반면 노키아는 ‘내가 1위인데, 왜 모바일에서 존재감도 없던 구글과 손잡아야 하느냐’며 자체 OS 심비안만 고집했다.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지만 거대한 ‘공룡조직’이 유턴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차별화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윈도폰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키아는 애플이 바꾼 게임의 법칙을 빠르게 따라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 핀란드 정치 경제도 위기

노키아는 세계 경제의 변방이었던 핀란드를 유럽 IT의 허브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노키아는 이제 핀란드의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이것이 핀란드’라는 핀란드 정부의 홍보 사이트에는 “1년 전만 해도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 성장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고 적어 놓았다.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의 대표작은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인기 게임 ‘앵그리버드’다.

하지만 앵그리버드 같은 게임산업은 부가가치는 높아도 제조업만큼 고용 효과가 높진 않다. 노키아는 벌써 6월 말 약 7000명에 이르는 인원감축안을 내놓았다. 이 중 핀란드에서만 1400개다. 납세액도 줄어들었다. 핀란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7년 13억 유로(약 1조9708억 원)였던 노키아의 납세액이 2009년에는 약 1억 유로(약 1516억 원)로 감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보도에서 “노키아의 고통이 핀란드의 고통이 됐다”고 보도했다.

노키아와 핀란드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상위 1000대 기업의 매출액 1893조 원 가운데 10대 기업의 매출액은 403조 원으로 21.3%를 차지했다. 1위인 삼성전자의 매출액(153조 원)은 국내 GDP(1172조 원)의 약 13%에 이른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경제에서 스마트 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기업 생태계 구조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만약 삼성과 LG 등이 무너지면 한국은 전체 산업 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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