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투자자문사 포트폴리오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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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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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종목 다걸기’ 랩어카운트, 하락장엔 ‘폭탄’

《 자문형 종합자산관리계좌(랩어카운트)가 외국인과 일부 기관투자가의 ‘공(空)매도’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자문형 랩으로의 자금 유입이 정체된 상황에서 외국인이 보유 종목을 팔아야 하는 자문형 랩을 공매도 공격의 표적으로 삼은 것. 최근 장중 2% 넘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외국인의 자문형 랩 공격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 주가의 하락을 예상해 이 주식을 빌려 팔았다가 나중에 실제로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매입해 차익을 챙기는 투자 방식이다. 》
○ 1년새 8배로 덩치 커져

지난해 4월 말 1조569억 원이던 자문형 랩의 순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부터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해 올해 1월에는 7조 원을 넘기더니 3월에는 8조3974억 원으로 커졌다. 자문형 랩은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10∼15개의 대형 종목에 집중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한다. 자문형 랩에 투자자금이 몰리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자문사 7공주’라는 표현이 유행하기도 했다. 자문형 랩이 집중 투자하는 대형 종목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문제는 증시 상승세가 꺾이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문형 랩의 순자산이 8조 원을 넘어서면서부터 자금 유입 속도가 둔화됐다. 자문형 랩은 보유 종목이 일부에 국한돼 증시 하락기에는 위험을 분산할 안전장치가 없다. 보유 종목에 매도가 몰리면 주가지수와 랩의 수익률이 동반 하락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동아일보 경제부가 7일 8개 투자자문사 랩 상품의 포트폴리오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현대자동차 LG화학 하이닉스 현대모비스 OCI 엔씨소프트 현대건설 SK이노베이션 현대중공업 KB금융 등 10여 개 종목을 4개 이상의 자문사가 높은 비중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자문사들은 ‘주식을 60% 이상 보유해야 하는 주식형 펀드와 달리 랩은 주가 하락기에 현금 보유분을 한도 없이 늘릴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증시 하락기에는 이들 주식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또 자문형 랩이 보유한 대형 종목들이 주가지수의 움직임을 좌우하다 보니 증시의 일일 변동폭을 키우는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의 일간 변동성은 지난해 0.95였지만 올해 들어 10일까지는 1.09로 커졌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재정위기 재부상 등 세계 증시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지난해와 다름없지만 국내 증시의 불안정성이 커진 밑바탕에는 지난해 말부터 급증한 자문형 랩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투자자문사 임원은 “일부 자문사는 조 단위로 몰리는 돈을 이용해 자사가 산 종목의 주가를 나중에 들어온 자금으로 떠받치는 경우가 있었다”며 “최근 돈 유입 속도가 주춤하고 일부 투자자는 해지하면서 돈으로 주가를 떠받치는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있다”고 말했다.

○ 공매도에 무방비 노출


자문형 랩의 포트폴리오는 실시간으로 투자자에게 공지된다. 공모형 펀드가 3개월의 시차를 두고 보유 종목을 공개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구조다. 자문형 랩의 이런 특성 때문에 적지 않은 투자자가 한때 ‘랩 따라하기’에 나서 증시에서 일부 종목 쏠림 현상이 더 커지기도 했다.

자문형 랩의 순자산 8조 원은 67조 원에 이르는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의 헤지펀드들이 특정지역 펀드 규모가 2조 원 수준만 돼도 추가 투자를 받지 않는 관행을 감안하면 8조 원이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다.

특히 자문형 랩의 보유종목 즉시 공개는 외국인의 공매도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공매도의 80∼90%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코스피가 2.64%나 떨어졌던 지난달 23일 공매도 규모는 3429억 원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였다. 총거래금액 대비 공매도 규모는 올 들어 1%대인 날이 많지만 5월 이후에는 2∼5% 수준으로 커졌다. 임태섭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한국지점 공동대표는 “상대방이 무슨 패를 들고 있는지 뻔히 아는 상태에서 언젠가는 팔아야 하는 종목이라면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게 당연하다”며 “과거에도 외국인은 수급이 한쪽으로 쏠렸을 때 공매도를 통해 차익을 챙겼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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