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 압박 몰린 삼성 -LG… 中企영역 MRO사업 대폭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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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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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연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촉구하자 삼성과 LG그룹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그동안 대기업의 MRO 사업이 중소기업 경영을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삼성그룹은 25일 “삼성 계열사들이 소모성 자재를 납품받기 위해 2000년 설립한 아이마켓코리아(IMK)는 앞으로 계열사 및 1차 협력업체 위주로 영업하고 신규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존에 정부나 공공기관과 맺은 공급 계약은 거래 기간이 끝나는 대로 중단하기로 했다.

삼성은 MRO 분야의 동반성장 대책도 내놓았다. 중소기업계와 학계의 추천을 받아 IMK에 사외이사 2명을 추가로 선임하고, IMK 이사회 산하에 동반성장 자문기구를 설치하며, 중소기업이 MRO 해외 판로를 개척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MRO 1위 업체 서브원을 보유한 LG그룹도 이날 “2차 협력업체 이하 중소기업으로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공구도매상들과 MRO 문제를 협의해 온 서브원은 적정 이윤 보장을 위한 협상 등 4가지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해 동반성장을 도모하기로 했다.

2000년대 들어 기업이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강조하면서 급속히 확산된 것 중 하나가 바로 MRO다. 가령 예전에는 A기업이 볼펜이 필요하면 B볼펜회사에 한 자루에 100원씩 주고 직접 샀다. 그런데 구매 인력과 비용을 줄이면서 더 싸게, 더 간편하게 볼펜을 사기 위해 구매를 아웃소싱하게 된다. MRO 업체를 통해 볼펜, 복사용지, 전구 등을 일괄 구매하는 대신 볼펜 한 자루를 90원에 납품받는 식이다. 누이(A사) 좋고, 매부(MRO 업체) 좋지만 납품하는 B사는 수익성 악화를 겪어왔다. MRO 업체의 중간 마진 때문에 한 자루에 80원을 받고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MRO는 큰 투자를 하지 않아도 시스템만 잘 갖추면 이윤을 낼 수 있어서 대기업들이 세를 불렸다. LG는 1990년대 말 발 빠르게 MRO 시장에 뛰어들어 서브원을 국내 1위의 MRO 업체로 키웠다. 서브원의 지난해 매출 3조8500억 원 가운데 빌딩관리업과 곤지암리조트 등을 제외한 순수 MRO 매출은 2조2000억 원에 이른다. IMK도 지난해 1조55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포스코의 ‘엔투비’와 코오롱의 ‘코리아이플랫폼’이 뒤를 잇고 있다.

삼성과 LG가 전격적으로 사업 축소를 선언함에 따라 포스코와 코오롱도 고민에 빠졌다. 포스코는 “구매 업무를 간소화하려고 설립한 것이라서 이미 계열사 위주로 업무를 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이지만 주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코오롱은 “MRO를 자체 설립한 다른 대기업과 달리 우리는 기존의 업체를 인수한 것이라서 외부 매출 비중이 높다”면서도 “중소기업청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조정회의에서 합의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영업 손실을 볼 정도로 MRO를 소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SK는 “계열사들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용도라서 사업 규모를 줄일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삼성과 LG의 발표에 반색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삼성과 LG가 먼저 MRO 시장 진출 자제를 발표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동반성장을 이루는 미래를 향한 큰 첫걸음이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의 MRO 업체들이 최근 몇 년간 공공 및 일반 시장까지 잠식함에 따라 5만여 중소 공구, 문구 유통 도매상들이 시장을 빼앗겼다고 주장해 왔다. 중소 공구, 문구 유통 도매상은 지난해 4월 삼성, LG, 코오롱, 포스코를 상대로 사업조정신청을 냈지만 최근까지 8번의 자율조정협의 시도가 모두 결렬돼 격앙된 상태였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운영(Operation)의 약자로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 서비스를 일컬음. 개별 기업의 운영에 필요한 자재를 대신 구매해 납품하고 관리, 컨설팅해 주는 것. 대기업이 MRO에 뛰어든 초창기에는 계열사에 필기구나 복사용지 같은 일회성 용품을 공급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으나 점차 소프트웨어, 통신장비, 공장 설비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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