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부실 계열사 ‘꼬리 자르기’ 잇따르자…

  • Array
  • 입력 2011년 3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뿔난 은행들 “재벌 ‘묻지마 대출’ 없앨 것”

《 대기업들이 계열 건설사들의 자금난을 외면하는 이른바 ‘부실 계열사 꼬리 자르기’를 계기로 은행권의 그룹 대출관행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계열사 여신심사를 할 때 대기업그룹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산점을 줬으나 당장 이런 혜택부터 없애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금융전문가들은 “‘꼬리 자르기’ 행태는 대기업그룹과 은행권의 공존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증거”라며 “부동산 경기침체로 ‘제2, 3의 LIG건설’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건설업종 대출을 선제적으로 줄여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 평가시스템 수정 불가피

은행들은 지금까지 대기업 계열사가 부실하더라도 ‘그룹의 지원이 있으면 재무유동성이 좋아질 것’이라는 암묵적 보증에 기대어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올해 들어 대기업의 부실 건설사 꼬리 자르기 행태가 잇따르면서 은행권에서 연일 강경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은 “그룹과 은행의 신뢰가 깨진 만큼 계열사에 대한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는 관행은 없어질 것”이라며 “꼬리 자르기를 한 그룹의 ‘부정적 평판’도 대출심사 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B은행 여신담당 임원도 “모회사가 튼튼하더라도 계열사 지원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대출을 회수하는 상황도 생길 것”이라고 했다.

C은행 여신담당자는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평가시스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며 “금융당국이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처럼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건설업에서 대출을 먼저 회수하려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일부 그룹이 부실 계열사 지원을 거부한 것에 대해 ‘꼬리 자르기’라며 부도덕한 행태로 몰아세우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주주에게 무한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주장이라는 것.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 부실을 끌어안다가 그룹 전체로 부실이 번지면 국민경제에 더 큰 악영향이 미친다”며 “정부가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를 권유하는 것도 이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갑을관계

재벌과 은행의 공존관계가 이처럼 갈등관계로 바뀌게 된 시초는 한솔건설이다. 한솔그룹의 계열사인 한솔건설은 지난해 10월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우리은행은 그룹 차원의 지급보증을 요구했으나 한솔그룹이 추가 지원을 거절했다. 워크아웃이 불발되자 한솔건설은 결국 올해 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이 자회사를 끝까지 끌어안으려는 자세를 보인 것과는 상반된 행태여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올해 들어서도 효성그룹이 진흥기업에 대해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LIG그룹은 LIG건설을 법정관리로 내몰았다. 모그룹이 은행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계열사 정리에 나서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돈줄이 은행권 대출에서 채권 발행과 자산 유동화와 같은 직접 조달로 다변화되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로 시중 유동성이 넘치면서 기업의 은행의존도가 낮아진 것도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 금감원 “LIG건설 CP 기습발행 조사” ▼
LIG손보 정기검사 앞당겨 내주 실시


한편 금융감독원은 당초 5월로 예정된 LIG손해보험에 대한 정기검사를 앞당겨 다음 주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검사에서 금감원은 LIG건설에 대한 LIG손보의 채권 규모와 계열사 부당 지원 여부 등을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또 LIG건설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발행한 기업어음(CP)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CP를 매입한 투자자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투자자 민원이나 진정이 들어오는 즉시 CP 발행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