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Dream/현장에서]전세대란 속 ‘반전세’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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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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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경제부 기자
김현진 경제부 기자
전세난 확산으로 보증부 월세, 즉 ‘반전세’ 트렌드가 가속화되면서 곳곳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주인으로서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이 반갑겠지만 세입자는 월세가 ‘버리는 돈’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서울 마포의 한 공인중개사 역시 “나도 전세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하필 한창 일하던 중 전세 물량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는 중학생 딸을 대신 보내 집도 보지 않고 ‘묻지마 계약’을 해버렸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같은 ‘선수’마저 떨게 할 정도로 월세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은 큰 편인 듯하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전세대란’의 시발점인 서울 잠실에서는 이미 ‘반전세’가 대세다. 특히 2년 전 새로 입주한 대규모 재건축 단지의 재계약 시점이 최근 완료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월세 성적표’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의 전용 40m² 아파트에 2년 전 입주한 기자의 지인 A씨는 당시 전세금으로 1억6500만 원을 냈다. 최근 전세금을 2억4000만 원으로 올려달라던 집주인은 고민할 틈도 없이 다시 연락해 와 “보증금은 그대로 하되 매달 월세 50만 원을 받겠다”고 했다.

집주인은 오른 전세금 2억4000만 원을 그대로 받아 은행에 예치할 경우 1년 후 수익이 960만 원이지만 반전세로 돌리면 기존 전세보증금에 대한 이율과 월세를 합쳐 연126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매달 25만 원꼴로 더 이득인 셈이다. 반면 A 씨는 “나한테는 손해인 것 같다”며 눈물을 머금고 신천동의 낡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월세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역시 잠실의 새 아파트에 살던 B 씨의 집주인은 2억 원이던 전세금이 4억3000만 원으로 치솟자 전세금 2억 원에 월세 95만 원의 반전세 계약을 맺자고 연락해 왔다.

B 씨 역시 그래도 전세가 낫지 않나 싶어 여러 은행을 다니며 수소문해 봤다. 그러나 B 씨가 받을 수 있는 전세자금 대출 이자율은 연 7.5%에 달했고 여유자금을 제외한 2억 원을 대출받을 경우의 이자만 단순 계산해도 연 1500만 원이었다. 월세 95만 원을 1년 치 내는 금액인 1140만 원보다 비싼 것이어서 B 씨는 집주인과 반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B 씨의 월세 환산이율(일년 치 월세를 전세금 차액으로 나눈 것)은 4.96%로 은행대출이자보다 낮아 반전세 계약을 맺는 것이 대출을 받는 것보다 월 48만7500원꼴로 이득”이라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 집주인과 덜 내고 싶은 세입자 간 ‘기싸움’은 늘 존재해 왔다. 그러나 반전세가 확산되면서 계산기까지 두드리는 ‘머리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전세는 ‘내 집 마련’의 대기수요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만약 국내에도 전세 대신 월세 시스템이 전격 도입되고 부동산을 통한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가 오면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정렬 영산대 교수(부동산금융학)는 “목돈을 부동산에 묶어두지 않게 되면서 해외 선진국처럼 가처분 소득을 레저나 자기개발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한국 임대차시장의 미래를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반전세니 반월세니 하는 기형적 임대차 행태를 경험하는 와중에 이미 우리는 국내 부동산시장 ‘빅뱅’의 중심에 서버리게 된 것 같다.

김현진 경제부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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