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유흥업소 탈세 잡자던 현금영수증 ‘稅파라치’ 제도… 사실상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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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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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소비자 ‘이익 짝짜꿍’
포상금 15억 책정했지만 작년 지급액 10% 밑돌아

지난해 12월 결혼한 A 씨는 예식장 직원에게서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신용카드로 계산하면 1인당 식비가 3만 원이지만 현금으로 하면 부가가치세 3000원을 깎아서 2만7000원에 해준다는 것. 결국 현금으로 1350만 원(하객 500명)을 결제해서 150만 원을 적게 냈다. 예식장에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신고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현금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세무당국이 지난해 4월부터 전문직과 학원, 유흥업소, 예식장 등의 사업자를 대상으로 30만 원 이상 거래 시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포상금을 지급하는 ‘세(稅)파라치’제도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세파라치 포상금으로 총 15억 원이 지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예산을 배정받았지만 지급된 액수는 1억3300만 원(319건)으로 10%도 안 됐다. 다른 세금 관련 포상금이 연간 20억 원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독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신고 포상금이 적은 것이다.

○ 세파라치가 힘 못 쓴 이유는

현금영수증 의무제는 사업자가 소비자가 원하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현금영수증을 끊도록 하고 또 이를 위반한 사업자를 신고할 경우 신고자가 현금영수증 미발급액의 20%를 포상금으로 가져가도록 한 제도. 하지만 소비자들은 포상금보다는 사업자가 제시한 할인을 선택했다. ‘조세정의’보다는 ‘사익’을 챙긴 것이다. 신고를 했을 경우 신고자의 신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도의 정착을 막았다.

전문가들은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화가 실패한 원인으로 사업자와 소비자 간에 담합할 가능성이 충분했는데 사전에 이를 막을 장치를 만들지 못한 점을 꼽는다. 또 일부 전문직 사업자의 경우 소비자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어 소비자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문직 중 특히 임플란트, 성형 같은 고가의 수술을 하는 병·의원에서 현금영수증 발급이 미미하다”며 “소비자들은 의사들이 시술을 엉터리로 하거나 예쁘게 안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병·의원 측에 현금영수증 요구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도 마찬가지. 세무사 유모 씨(37)는 “학원에서는 수강료가 50만 원이라고 하면 25만 원씩 나눠서 장부에 기록하는 등 ‘쪼개기’를 해 30만 원 이하로 회계 처리를 한다”며 “학부모들도 자녀의 미래가 걸린 학원을 함부로 신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병원이나 학원처럼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계약’이 많은 의무가맹점에서는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도 적발하기가 어려워 신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신분 보장도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신고를 꺼린다. 유흥업소에서도 현금과 신용카드 결제 시 결제금액의 차이는 확연하다. 한 유흥주점 관계자는 “손님 대부분이 카드 결제보다는 10% 이상 저렴한 현금을 선택하지만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 의무발행가맹점 스티커 의무화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해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났듯이 같은 방식으로 현금영수증 사용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탈세를 많이 하고 소득을 숨기는 것은 관련 제도가 부실한 게 아니라 거래 관행과 납세 의식이 문제”라며 “선진국에는 탈세를 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3월부터 27만 개 사업장에 ‘현금영수증 의무발행가맹점’ 스티커 부착을 의무화해 소비자와 사업자 간 담합을 막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의무발행가맹점에 “우리 점포에서는 가격 인하를 조건으로 현금거래를 하지 않겠습니다”와 같은 내용의 스티커 부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시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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