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美선 슈퍼마켓서 감기약 사먹는데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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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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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슈퍼 판매’ 17년 논란 재점화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번 논란의 불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댕겼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 보건복지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감기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떤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후 시민단체들이 줄줄이 판매 허용을 촉구하며 1993년부터 제기된 해묵은 공방이 재연될 조짐이다. 건강복지공동회의, 소비자시민모임,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25개 시민단체는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를 구성해 서명운동과 입법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 ‘편리’ vs ‘안전성’

국내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그렇지 않은 일반의약품으로 나뉜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전문의약품 품목은 2만1050개, 일반의약품은 1만7270개다. 일반의약품은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 소화제 지사제 진통제 진해제 등 구급용 의약품과 요오드팅크 암모니아수는 약국과 도서, 벽지, 항공기, 열차, 고속도로휴게소 등에서 살 수 있다. 일반의약품을 약국 외에서 사려면 의약품을 재분류해야 한다. 시민연대는 현행 일반의약품을 세분해 영국처럼 약국약(pharmacy medicine)과 자유판매약(general sale list)으로 나누자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안전성을 이유로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약사회는 6일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는데 슈퍼에서 팔린 의약품이 문제가 될 경우 책임질 주체가 없다”고 밝혔다. 민병식 대한약사회 부장은 “우리나라의 약국당 인구는 2300여 명으로 세계적으로 접근성이 좋다”면서 “접근성이 좋은 나라에선 편의보다는 안전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의약품 중에 게보린 타이레놀처럼 복약에 주의해야 하는 약이 늘고 있다는 게 약사회의 주장이다.

시민연대 측은 보험재정 안정과 편의를 강조한다. 슈퍼 판매 도입으로 병원이나 약국을 찾는 횟수가 줄면 진료비가 줄어 건강보험 재정이 안정된다. 병원이나 약국을 오가며 드는 비용과 시간도 줄어 소비자 편의가 증대한다. 또 약을 제때 못 먹어 추가로 드는 비용도 절감된다. 시민연대 측은 약사회가 주장하는 안전성 문제도 반박했다. 5년 이상 장기간 부작용 보고가 없는 일반의약품의 경우 의약정보가 부족한 어린이 등을 제외한 일반인에게 판매하도록 하면 문제없다는 것이다.

권용진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교수는 “일반의약품 중 30개 품목을 시범 판매하면서 안전 문제에 대한 개선책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 미국 일본 허용 vs 프랑스 불허

미국 일본 영국 스웨덴 캐나다 등은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의약품에 한해 슈퍼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는 의약품을 OTC(Over-the-counter)로 분류하는 미국은 10만 개 품목을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일본은 1998년 4월부터 일부 일반약(드링크제 비타민제 등 15개 품목)의 소매점 판매를 허용했다. 일본은 2004년 7월 안전상의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소화제와 정장제 등 371품목의 판매를 허용했다. 2009년에는 ‘등록판매자 제도’도 신설했다. 등록판매자는 약사가 아니어도 지자체가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해 실무경험 1년 이상을 쌓으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 수시로 의약품을 재분류하는 영국은 진통제 피부연고제 소화제 등을 자유판매약으로 지정해 왔다.

반면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핀란드 그리스 슬로바키아 등은 한국처럼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OTC 슈퍼 판매에 대한 논란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구체적이어서 사태를 속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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