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인력 국제화 실험’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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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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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법인 주재원 줄이고 현지인 채용 확대… 의사결정권까지 위임

《 삼성전자가 새해에는 본격적으로 ‘인력 국제화 실험’에 나선다. 8일 단행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현지 채용인력 가운데 7명을 임원(상무)으로 승진시킨 삼성전자는 앞으로 본사에서 해외법인으로 파견하는 국내 주재원 수(현재 1500여 명)를 줄이고 현지 채용인력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이와 함께 현지 채용인력에 의사결정 권한을 단계적으로 위임하기로 했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답지 않게 외국인을 요직에 배치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삼성전자가 변화를 시도함에 따라 재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9일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달 16, 17일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내년도 글로벌 전략회의에서 현지 채용인력 확대와 권한 위임 등이 논의됐다”며 “창의성과 개방성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
이번 글로벌 전략회의에선 최지성 부회장과 이재용 사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주요 임원과 해외 법인장 등 300여 명이 참석해 내년도 사업계획과 전략을 공유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LG, 두산그룹 등이 각각 본사 부사장과 부회장에 외국인을 대거 영입한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외국인 고위직 임원이 적다. 국내외를 통틀어 삼성전자의 총 임직원 15만7701명 가운데 외국인은 7만2612명(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이 전체 임직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임원은 14명에 불과하고 최고위직은 전무급 3명뿐이다. 그나마 데이비드 스틸 전무와 팀 벡스터 전무, 왕통 전무는 본사가 아니라 각각 미국과 중국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반면 기아차의 경우 아우디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 수석디자이너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에 앉혀 K5와 K7으로 이어지는 디자인 혁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이 해외법인을 중심으로 조직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최근 이건희 회장이 “다가올 10년의 변화에 위기감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삼성에 큰 충격을 안겨준 ‘아이폰 쇼크’가 결국 변혁을 주도하지 못하고 늘 1등을 추격해 온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에만 국한된 결과라는 내부 반성에 따른 것. 다가올 10년을 맞아 회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사내 소통을 확대하는 동시에 외국인 인력에 개방적인 조직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이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는 도요타 리콜 사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리콜 사태 당시 도요타 이사회에는 외국인이나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이미 2009년부터 불거졌던 가속페달 결함 문제에 대해 도요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회의실에 다양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미 글로벌화된 비즈니스 환경에서 온갖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현지 법인에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삼성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삼성은 이번 인사에서 해외 법인장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법인 책임자에 부회장급(강호문 부회장)을 배치하고 중남미 총괄책임자를 전무에서 부사장급(유두영)으로 격상시키는 등 해외법인에 대폭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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