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보유 규제 완화’ 공정거래법 개정안 2년넘게 국회서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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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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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 지주사, 19개 금융사 팔아야할 판… 현행법으론 소유금지… 당장 연내 8곳 매각해야
재계 “정치논리로 개정 지연… 국부 유출 우려”

지주회사의 규제완화 조항을 담은 공정거래법이 2년 넘게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개정안은 지주회사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반면 현행법은 지주회사의 금융사 소유를 무조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당장 올해 말부터 지주회사들의 금융사 매각 러시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시장의 혼란이 우려된다.

○ 지주회사 전환이 도리어 발목?

SK, CJ, 두산, 코오롱 등 일부 대기업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자는 차원에서 2007년 이후 잇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해왔다. 하지만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던 것이 복병이 됐다. 공정거래법이 일반 대기업이나 금융지주회사와는 달리 지주회사는 금융사를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로 전환한 회사는 2년 이내에 금융사를 처분하도록 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한 차례(2년) 처분 기한을 연장해주고 있다. 2007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SK와 CJ는 한 차례 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각각 내년 7월과 9월까지 SK증권과 CJ창업투자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1월 지주회사로 전환한 두산은 두산캐피탈을 비롯한 4개의 금융사에 대해 처분기한 연장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이런 규제에 걸려 있는 기업은 현재 12개 지주회사의 19개 금융사다.

○ 정치논리에 발 묶여 발만 동동

기업들은 유독 지주회사에만 금융사 보유를 금지한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해왔다. 학계에서도 같은 문제를 지적해왔다. 정부도 이런 지적에 공감해 2008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경우 보험사를 포함한 금융사 3개 이상 보유, 또는 금융사 자산 총액의 합이 20조 원 이상인 경우 금융지주회사를 의무적으로 설립하도록 했다. 금융지주회사 산하에 금융사를 둠으로써 사실상 지주회사도 금융사를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기약도 없이 멈춰 섰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2010년 4월에야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통과했고, 이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이 묶였다. 법사위의 일부 야당 의원이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내용’이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들은 당장 올해 말까지 8개, 내년에 8개, 2012년에 3개의 금융회사를 매각해야 할 처지다.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우량 금융사들이 법의 잘못된 규제 때문에 시장에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게 생겼다”면서 “1997년에 우량 회사들이 무더기로 외국에 팔려나가면서 국부가 유출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개정안이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쳤고, 당초 정부가 7개 항목의 규제를 완화하려다가 2개의 규제만 완화(금융사 및 증손회사 규제 완화)했는데도 정치권이 발목 잡기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올해 스폰서 검사 사건, 지방선거 등으로 국회가 파행을 겪은 것을 들어 ‘정치 논리로 인한 법안 심사 지연’이라고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주회사를 장려하면서 역차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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