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등 작업장 희귀질환… 산재 적용기준 완화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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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인과관계 입증’서 ‘기업이 관계없음 입증’으로

그동안 정부가 산업재해(산재) 보상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백혈병 등 작업장 희귀질환에 대해 산재 적용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작업장 내 희귀질환에 대한 산재보상 기준이 너무 엄격해 실질적인 보상이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업체 작업장에서 희귀질환으로 사망한 사례는 2006년 8월 삼성전자 기흥공장(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이숙영 씨(당시 30세·여)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져 산재 논란이 벌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당시 22세·여)도 같은 질병으로 2007년 3월 사망하는 등 삼성그룹 계열 전자·전기 제조공장에서만 최근까지 35명이 숨지면서 일부 시민단체가 작업장 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삼성그룹 계열사에서만 희귀질환에 걸린 근로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중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한 16명 가운데 10명은 불승인 판정이 났다. 나머지는 현재 공단 심의가 진행 중이다.

이들에 대한 산재보상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발병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이 사실상 피해자에게 있기 때문. 또 작업장 안에서 발암물질 등 유해물질이 발견됐더라도 이것이 얼마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사실상 피해자가 밝혀내야 한다. 고용부는 “의학지식이 없는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밝힌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짧게는 몇 년 동안 진행된 희귀질환을 지나치게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로 입증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어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기업체 작업장에서 발생한 희귀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판정돼 산재보상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고용부는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피해자 입증’ 방식에서 ‘작업장 환경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경우 국가가 선(先)인정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만약 피해자에 대한 산재 인정으로 산재보험요율이 올라간 해당 사업장이 이에 불복할 경우 회사업무와 해당 근로자의 질병 간에 관계가 없음을 회사가 입증하는 방식이다. 고용부는 “워낙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안이라 관련 전문가와 노동계, 경영계의 의견을 신중히 듣고 내년에 기준을 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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