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상상 이상’ 해커들의 응용력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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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헬리콥터가 날아오릅니다. 이 헬리콥터는 카메라를 통해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스스로 해석해 앞에 놓인 장애물의 가까움과 높낮이를 파악합니다. 사람이 아무런 조종을 하지 않아도 혼자 이륙해서 장애물을 피해 비행한 뒤 안전한 지점에 착륙까지 합니다. 이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은 자동운전 헬리콥터의 얘기입니다.

만약 모형 헬리콥터가 아닌 진짜 헬리콥터였다거나 우리가 몰고 다니는 자동차였다면 어땠을까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꿈꾸던 자동운전 기술의 완성일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헬리콥터를 만든 사람들이 유명 대학이나 하이테크 기업의 연구자들이 아니라 이름 없는 컴퓨터 해커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동운전 헬리콥터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최근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들어 판매하는 ‘키넥트’라는 게임 컨트롤러를 헬리콥터에 설치한 거죠. 키넥트는 사람의 움직이는 동작을 여러 대의 카메라로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해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이 덕분에 사람들은 TV화면 앞에서 주먹을 내밀어 복싱게임의 상대방을 때린다거나 춤을 춰서 댄스 경연 대회를 할 수 있습니다. MS가 ‘사람을 바라보고 움직임을 해석하는’ 기계를 만들자 해커들이 헬리콥터에 ‘사람처럼 세상을 보고 주변을 해석하도록’ 사용한 것입니다. MS의 제품도 혁신적이었지만 해커들의 응용력은 더 혁신적이었죠.

올 한 해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화두가 바로 ’혁신’이었습니다.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기술을 응용한다는 점에서 이 사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올해 휴대전화 강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아이폰 쇼크’나 싸이월드의 나라임을 무색하게 만든 ‘트위터, 페이스북 쇼크’ 등이 이런 외부 기술을 이용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온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올 한 해 화제였던 애플의 아이폰을 보죠. 좋은 평가를 받는 아이폰의 터치스크린은 기존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펜으로 글씨를 쓰기 어렵다’며 사용을 꺼린 걸 개선한 겁니다. 아이폰의 음악과 영화,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아이튠스’는 애플이 통째로 외부에서 사들인 프로그램이었죠. 이처럼 존재하는 기술을 잘 합친 게 바로 아이폰의 혁신이었습니다.

MS의 키넥트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도 MS의 것이 아닙니다. 키넥트의 핵심은 카메라로 받아들인 주위의 영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인데 이는 ‘프라임센스’라는 이스라엘 벤처기업의 기술입니다. 지금 시대의 혁신은 기술을 처음부터 만들어내서 이루는 대신 존재하는 기술을 빠르게 적용시키는 데서 이뤄집니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의 혁신도 ‘키넥트로 헬리콥터를 스스로 날게 한다’는 식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개인의 상상력은 때로는 집단의 사고를 뛰어넘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MS는 키넥트에 대한 해킹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 다양한 환경에서 키넥트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더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죠. 한국 기업들도 외부 기술에 적극적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자신들의 기술을 외부에 더 공개해야 할 때라는 생각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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