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주인찾기’ 장기 표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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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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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대출금 서류 내일 시한… 현대그룹 미제출땐 소송전 불가피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수렁에 빠진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14일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까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으로부터 빌린 1조2000억 원의 성격에 대한 증빙자료를 제출하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현대그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어떤 시나리오가 진행되건 ‘현대건설 주인 찾기’는 표류가 불가피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 “사태 장기화는 불가피해졌다”

현대그룹이 채권단 요구대로 14일까지 대출계약서나 세부계약 조건을 담은 문서 ‘텀 시트(term sheet)’를 제출하면 매각 절차는 일단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으로서는 주식매매계약(본계약) 단계까지 절차는 그대로 진행한 뒤 본계약 단계에서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에 넘길지를 결정하는 게 소송이나 비난 여론에 대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본계약에서는 외환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채권단운영위원회 3곳 중 한 곳만 반대해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수 없게 된다.

현대그룹이 증빙자료 제출을 끝까지 거부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 해명이 안 된 만큼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를 해지하려 들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현대그룹과 소송전이 불가피하다. 현대그룹은 이미 법원에 ‘MOU 해지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 실무담당자 3명을 ‘입찰방해 및 업무상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며 채권단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고발장을 내면 ‘매각 주체에게 어떤 소송도 내지 않겠다’고 한 입찰확약서를 위반한 걸로 보고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대상자 지위 박탈을 검토하겠다”고 맞섰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현대차그룹이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을 잃는다면 현대건설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 “채권단, 애매한 태도로 불신 자초해”

이처럼 현대건설 인수전이 파행으로 치달은 데 대해 ‘엄정한 심판이 돼야 할 채권단이 오히려 내부 갈등을 드러내는 등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채권단에 대한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에는 “채권단이 고비마다 애매한 태도를 보인 데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는 해석이 많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이 MOU를 기습적으로 단독 처리하고 MOU 문구에도 ‘합리적인 범위’ 등 모호한 문구를 넣어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 제출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준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또 △현대그룹에 자금 출처에 대한 소명기간을 계속 연장해주고 △우선협상대상자 심사에 20시간만 걸린 것 등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공개적으로는 채권단에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는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에도 외부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것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왜 원래 정해진 원칙대로 못하나’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대출계약서나 텀 시트를 14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는 전례가 없고 부당하며, MOU에 나온 ‘합리적 범위’도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채권단이 우왕좌왕한 것은 채권단의 현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민영은행으로서 MOU 체결을 미뤘을 때 제기될 소송이 부담스러운 반면, 공기업인 정책금융공사와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은 현대건설 매각의 ‘절차적 측면’보다는 그 ‘결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이 우왕좌왕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등이 여론과 소송을 무기로 채권단을 지나치게 흔들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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