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내 집 소유’ 패러다임

동아일보 입력 2010-09-20 03:00수정 2010-09-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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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는 누구라도 방랑을 꿈꾼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은 잠자리로, 산을 베개로 여긴다. 옛 고승(高僧)의 말이 아니더라도 몸 가는 대로 거리낌 없이 흘러가려 한다. 그만큼 힘이 넘치고 도전정신도 한계를 모른다. 이들을 어느 한 곳에 붙들어 두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젊은이의 발길이 종횡으로 지구촌을 누빈다.

그 연장선일까. 대체로 젊은 사람은 내 집을 갖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주변의 몇몇 젊은 친구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을 한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집마저도 거치적거리는 잡동사니로 간주될 법하다. 하기야 집뿐이겠는가. 결혼도 중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평균 초혼 나이가 서른 살 전후로 늦춰진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부동산가격이 점점 떨어지는 요즘의 상황은 ‘불난 집에 부채질’이 됐다. 어느 선까지 집값이 내려갈지 알 수 없는 형국에서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요즘에야 하락한다고 하지만 집값 탓도 적지 않다. 서울 집값을 돈버는 수준을 잣대로 비교하면 미국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보다 비싸고 한창 때의 일본 도쿄(東京)를 능가한다고 한다. 차곡차곡 벌어서 내 집을 장만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면 미리 포기하는 편이 현명하다.

자의든 타의든 이쯤 되면 ‘내 집 마련’이라는 오랜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뀐다고 볼 수 있겠다. ‘지상의 방 한 칸’ 장만한다고 고생고생 하느니 임차생활을 하겠다고 맘먹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에게는 ‘임차 패러다임’이 새롭지도, 낯설지도 않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한국을 뒤덮었을 때였다. 당시에도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자산의 가치가 곤두박질했다. 집값이 만만해졌는데도 적지 않은 사람이 전세로 살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이제 와 보니 그때의 ‘임차 패러다임 시프트’는 한바탕 꿈속의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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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내 부동산 전문가 51명에게 ‘귀하가 20, 30대 사회 초년생이라면 집을 사겠는가’라고 물었다. 가장 많은 37%가 ‘사겠다’고 답했다. ‘당분간 시장을 지켜보겠다’는 24%로 그 뒤를 이었다. 집을 사야 하는 이유로는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37%로 가장 많았다. 뭔가에 쫓기지도, 집주인과 다투지도 않고 사는 것만 해도 내 집이 주는 혜택으로 들렸다. 어느 전문가는 ‘집은 가계의 버팀목’이라는 말도 했다. 주택담보대출 자금을 사업이나 생계에 사용하는 비율이 전체 대출자의 40%를 넘는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어느 쪽을 따라야 할까. 이번 부동산시장 침체가 어떤 패러다임의 승리로 귀결될지 잘 모르겠다. 꽤 많은 전문가가 앞으로 부동산에 의지해 돈 벌기는 힘들다고 한 예상을 귀담아들을 뿐이다. 어찌되든 이참에 집이 투기대상이 아니라 거주공간으로 제자리를 잡기 바란다.

끝으로 추석 선물 하나. 앞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값이 오를 만한 곳은 어디일까.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울의 재개발, 재건축단지를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를 지목했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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