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양보없다” 分家 10년만에 진검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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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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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은 경영권 방어 위해… 현대차그룹은 경영권 승계 위해…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0년 9월 1일 재계 서열 부동의 1위였던 현대그룹이 ‘분가(分家)’를 시작했다. 현대그룹 내 ‘자동차소그룹’을 이끌던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정공(현재 현대모비스) 현대강관(현재 현대하이스코) 등 10개 계열사를 이끌고 독립했다. 계열 분리 당시 자산 총액 35조7000억 원으로 재계 서열 5위였던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이후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세를 확장해 10년 만에 자산 총액이 100조 원을 돌파하며 재계 서열 2위로 뛰어올랐다. 매출액은 10년 전 16조1000억 원에서 지난해 89조4650억 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반면에 자동차소그룹이 떨어져나가면서 재계 1위 자리를 삼성에 내준 현대그룹은 이후 현대중공업이 계열 분리되고, 경영난을 겪던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일부 계열사가 채권단 관리로 넘어가면서 사세가 축소돼 현재는 계열사 12개에 재계 순위 21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개운치 않게 결별했던 두 그룹은 10년이 흐른 지금,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경쟁자로 만나 정면승부를 벌이게 됐다.

○ 물밑 인수전 치열

같은 집안에서 분리된 탓에 두 그룹은 사업 영역이 거의 겹치지 않아 시장을 놓고 다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매물로 나오면서 상황은 변했다. 현대그룹은 주요 계열사의 공시에서 현대건설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힌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공식적으로는 “현대건설과 관련해 확정된 게 없다”는 태도이지만 물밑에서는 인수전에 대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법률자문사로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정했다. 이에 앞서 현대차그룹 측은 골드만삭스와 HMC투자증권을 인수자문사로, PwC삼일회계법인을 회계자문사로 낙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식 발표만 안 했을 뿐 필요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이 물밑에서 움직이는 것은 범현대가의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건설을 놓고 ‘집안싸움’을 하는 것처럼 외부에 비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실탄 확보 여부가 관건

현대그룹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건설 인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건설이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지분 8.3%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지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자칫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도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중공업 측에 넘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 지분 25.5%를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지분 8.3%를 추가로 확보하고 KCC그룹이 가진 지분(5.0%)까지 합하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현대그룹은 우호지분까지 합해 현대상선 지분의 46% 정도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목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그룹의 ‘적통성’ 때문에 인수를 원한다는 의견도 있고 그룹 사업다각화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논리도 나오고 있지만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의선 부회장은 그룹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차의 지분은 거의 없고 글로비스(31.9%)와 현대엠코(25.0%)의 대주주다. 정몽구 회장은 엠코와 글로비스 지분을 각각 10.0%, 20.3%씩 갖고 있다. 현대건설을 사들여 비상장회사인 엠코와 합병하면 엠코의 가치가 높아지고 엠코의 대주주인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은 우회 상장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챙길 수도 있는 구조다. 현대차의 고위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는 그룹의 최대 현안인 경영권 승계에 대한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단 자금 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우위에 있다. 6월 말 기준으로 현대차의 순현금 보유액은 5조 원이 넘는다. 반면에 현대그룹은 1조 원 이상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해두긴 했지만 나머지 부족분은 외부 자금조달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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