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채권단과 ‘벼랑 끝 대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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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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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개선 약정 → 현대건설 인수 차질 → 그룹 경영권 위협

채권단 “신규대출 중단” 제재
현대그룹 “약정 거부 불변”

‘건설’ 汎현대가로 넘어가면
주력사 지분전쟁 재연 우려

채권단 관계자는 “약정 체결 시한을 세 번이나 연장했지만 체결을 거부한 만큼 약정 체결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제재를 한 것”이라며 “계속 거부하면 단계적으로 제재 수위를 높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한 문장의 짤막한 발표문을 통해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현대그룹은 “그룹의 입장은 그대로이며, 채권단이 실제 행동에 들어가는지를 지켜보고 향후 조치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현재 1조2000억∼1조3000억 원의 현금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분간은 이를 바탕으로 자금 운영을 할 수 있지만 국내 은행을 통해 금융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래 견디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력 계열사이자 대출이 가장 많은 현대상선의 경우 새로 선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하거나 금융기관에서 장기로 선박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이 대출 중단을 감수하면서도 MOU 체결을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현대건설 인수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건설 인수에는 3조∼4조 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현대그룹의 부채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MOU를 맺으면 부채규모를 줄여야 하고, 신규투자에도 제약이 생겨 현대건설 인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고, 현대건설 인수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에 현대건설 인수가 절실한 이유는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3%의 향방에 따라 그룹 경영권이 도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현대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현대증권, 현대아산, 현대로지엠, 현대경제연구원 등 여러 계열사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현재 현대상선 지분 중 현대그룹 및 우호지분은 45%대다. 반면 현대중공업, KCC, 현대자동차 등 범현대가는 3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그룹 대신 범현대가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이 40%를 넘어서게 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2000년과 2003년 이후 세 번째 범현대가 전쟁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2000년 정몽구 현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과 고(故)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갈등을 벌였고, 2003년에는 정몽헌 회장의 뒤를 이어 경영을 이어받은 현 회장과 정상영 KCC 회장 간에 현대그룹 경영권 지분 전쟁이 벌어졌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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