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세대, 지식과 정보를 패스트푸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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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6일 11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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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계에서 사람들의 행동 특성을 추적하는 이른바 ‘디지털 풋프린트 digital footprint’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데이빗 니콜라스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니콜라스 교수는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열린 국제도서관회의 ‘도서관, 지식사회의 힘’에 해외 석학으로 초청받아 기조강연을 했다. 영국 국립도서관 브리티시라이브러리에서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맡고, BBC에서 방영한 <가상세계 혁명 Virtual Revolution>에 연구 성과를 소개하기도 한 니콜라스 교수를 만났다. <전문>

국제도서관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3일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니콜라스 교수(63·영국 UCL SLAIS학과장)는 먼저 월드컵 축구 얘기부터 꺼냈다. 바로 전 날 한국팀은 2대0으로 그리스팀을 격파했지만, 잉글랜드팀은 골키퍼가 공을 어이없이 놓치는 바람에 1대1로 미국과 비긴 터였다. 니콜라스 교수는 “축구 종주국의 체면이 안 선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한국팀이 참 잘했다”며 박지성, 이청용 등 ‘양박쌍용’의 이름을 줄줄이 읊을 만큼 애정을 보였다. 니콜라스 교수는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아스널 팬”이라며 웃었다.

가상 세계의 추적자, 디지털 풋프린트
니콜라스 교수는 국내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과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석학’으로 인정받는 유명 인사다. 지난 1~2월 BBC가 디지털 혁명을 야심적으로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 <가상세계의 혁명>에서 엘 고어 미국 전 부통령, 지미 웨일스 위키피디아 설립자 등과 나란히 등장했다. ‘디지털 풋프린트’를 추적한 그의 7년간 연구 성과가 디지털 세대를 해석하는 데 ‘정교한 레이더’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디지털 소비자의 행동 방식은 일반 소비자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달라지는 ‘읽기 < 보기’ 지형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보기(viewing)가 읽기(reading)를 대체하고 있다. 학자들조차 한 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10분이고, 수십 페이지나 되는 학술 저널의 원문을 읽는데 5분도 안 걸린다. 젊은 세대일수록 수하물(정보)만 집어 들고 재빨리 공항(사이트)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런 현상은 이메일, 문자메시지, 트위터 등 무슨 정보든 짧고 간략하게 만드는데 익숙한 디지털 소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 디지털 문화 프로젝트, 유러피아나
그는 CIBER(정보행동 연구평가센터) 소장이자 영국 국립도서관인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의 자문위원으로 영국 내 주요 디지털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유럽 26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한 ‘유러피아나(Europeana) ’에서 디지털 소비자의 행동을 추적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유러피아나는 2008년에 시작해 베타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 문화 프로젝트. EU의 주요 도서관, 박물관, 문화 관련 기관 등 100여 곳에서 제공한 600만 건의 디지털 아이템이 등록됐다. 이들 아이템은 텍스트(책, 신문, 편지, 일기 등), 이미지(그림, 지도, 사진 등), 소리(음악, 구술,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 등), 비디오(영화, 뉴스,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 멀티미디어를 망라한다. 당초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로 출범했지만, 지금은 ‘think Culture’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유럽의 모든 문화유산을 디지털 화할 계획이다.

‘바운싱 검색’하는 ‘패스트 정보 세대’
니콜라스 교수가 이끄는 CIBER 연구팀은 지난 7년간 전 세계 인터넷에서 학자와 연구자 1000만여 명의 학술 정보를 검색하는 디지털 풋프린트를 심층 추적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초기 1~2페이지만 검색한 후 재빨리 다른 사이트로 옮겨가는 바운싱(bouncing) 방식이 일반적이다.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그때까지 찾은 정보에 만족한다.
△동일 사이트를 재방문하거나, 다운로드한 정보를 열어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
△ 단순하고 편리한 검색을 선호하며 심지어 유명 연구기관조차 고급 학술데이터 검색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구글 검색은 학자들에게 학계 저널 데이터베이스 검색보다 인기가 훨씬 높다.

이 같은 특성은 학자나 연구자가 아닌 일반 디지털 소비자에게도 공통적이라고 니콜라스 교수는 추정한다.
“디지털 소비자들은 나이와 학식에 관계없이 패스트푸드를 섭취하듯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패스트 인포메이션 세대’ 또는 ‘구글 세대’이다.”

디지털 브랜드를 재정의하라
니콜라스 교수는 사용자들이 직접 지식과 정보를 찾아 나섬으로써 도서관과 같은 권위 있는 지식 중개자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기존 브랜드와 권위가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찾은 정보는 접속 경로가 복잡해서 누구의 정보인지 결정하기가 어려운데다, 설령 누구의 정보인지 안다고 해도 신뢰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는 한 가지 예로 2000년대 초 영국 국민의료보험(NHS)은 테스코(슈퍼마켓 체인) 지점에 무인단말기(키오스크 kiosk)를 설치해 건강정보를 제공했는데, 이를 추적한 CIBER의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무인단말기를 사용한 슈퍼마켓 고객들은 ‘이 정보는 누구의 것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테스코라고 대답했다. 연구자가 고객에게 ‘이 정보는 NHS가 제공하는 것’이라고 얘기하자 많은 고객들은 크게 실망했다. 테스코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지만, NHS는 미디어에서 주기적으로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영국인들에게 부정적인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세계에서는 실제 세계와는 다른 브랜드와 권위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며, 정보 중개자들이 고객과 직접 소통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니콜라스 교수는 강조한다.

Wag the Dog? Web the Dog!
“디지털 풋프린트는 가상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추적하고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현재 유러피아나 이용 고객(하루 100만 명)의 경우 디지털 풋프린트 작업을 통해 누가 어떤 디지털 정보를 더 많이 찾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국적, 성별, 연령별로 그들의 행동양식을 유형화할 수 있다. 이를 알아야 엄청난 투자로 마련한 인류 공동의 재산인 디지털 도서관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게 할 수 있다.”

니콜라스 교수는 “인류는 이미 가상 세계에 발을 내디뎠지만, 가상세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며 “가상세계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 머지않아 웩 더 독(wag the dog)이라는 말처럼 꼬리(가상세계)가 몸통(물리적 세계)을 흔들 날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데이빗 니콜라스 David Nicholas
UCL의 인포메이션 스터디스(Information Studies) 학과장, 리서치 그룹 CIBER(Centre for Information Behaviour and the Evaluation of Research) 소장으로 30여 개 디지털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런던 시티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 <미디어와 인터넷>, <디지털 컨슈머> 등이 있다. <BBC>, <더 타임스>, <가디언> 등 미디어 및 브리티시 라이브러리 등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최은숙 디지털 저널리즘 연구자zelcovatree@gmail.com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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