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신도시 쇠락을 통해 본 한국 신도시의 미래]<下>구도심 살리기 ‘도시재생’ 활발

  • Array
  • 입력 2010년 5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1 일본은 2000년 도시 내에 대형 쇼핑몰 설립을 규제하는 ‘대규모 소매점포 입지법’을 시행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급격히 쇠퇴해가는 지방 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였다. 이때부터 5년간 400개가 넘는 대형 쇼핑몰이 중소도시 외곽에 속속 들어섰다. 하지만 2007년 일본 정부는 이 규제를 폐지하고 정반대로 도시 외곽의 대형 쇼핑몰 설립을 금지했다. 면적 1만 m² 이상의 상업시설은 물론이고 시민회관, 종합운동장 같은 공공시설과 병원, 대학까지 교외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했다. 오사카(大阪)대 산업공학과 가가 아쓰코 교수는 “쇼핑센터, 공공시설 등을 교외에 짓도록 하면서 시 외곽을 개발하자 주택 수요도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오히려 지방 도시는 더 쇠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 일본 가가와(香川) 현의 현청소재지인 인구 42만 명의 다카마쓰(高松) 시는 지금도 인구가 늘고 있는 중견도시로 꼽힌다. 이곳 중심지 소매점포들의 연간 매출액은 1100억 엔(약 1조3300억 원). 다른 현청소재지가 인구가 감소하고 상권이 몰락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토교통성 가부타 후미히로 도시정책기획관은 “기존 시가지를 중심으로 꾸준히 상권을 개발한 동시에 주택, 병원, 문화시설, 복지시설 등을 집중시킨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콤팩트 시티’ 개발
공공기관-병원 등 도심 U턴
인구-상권 되살아나 활력

한국에 대한 충고

“인구감소 일본보다 빨라
외형확장 신도시 재고해야”

2005년부터 인구 감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팽창’ ‘확장’이라는 도시 개발의 기본 공식이 깨졌다. 그 대신 도시 시설을 집약적으로 배치하는 이른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정책이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지방 도시는 외형을 넓히는 대신 기존 구도심을 되살리는 도시재생 방식으로 돌아섰고 도쿄(東京) 오사카 같은 대도시도 업무·주거·상업시설이 혼합된 복합단지 개발이 한창이다.

○ 2030년 日도시 87% 경제규모 축소

일본도 강력한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했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지방 도시의 쇠퇴는 비켜갈 수 없었다. 모타니 고스케 일본정책투자은행 국제통괄부 참사역은 “1980년대부터 중소도시가 소도시로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현 내 제2도시 대다수가 쇠퇴기에 접어든 지 오래”라며 “최근엔 인근 중소도시의 구매력을 흡수해온 현청소재지급 도시까지 정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5년마다 실시하는 국세(國勢) 조사에 따르면 1985∼1990년 10만 명 이상의 중견도시 가운데 인구가 2.9% 이상 줄어든 도시는 한 곳. 하지만 2000∼2005년엔 23개 도시가 이 같은 인구 감소를 겪었다.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市町村)은 무려 72.5%에서 인구가 줄었다.

도쿄대 도시공학과 오니시 다카시 교수는 “젊은층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대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지방엔 고령자만 늘고 있다”며 “저출산으로 인한 학교 통폐합, 지역 상권 쇠퇴, 버스·철도노선 폐지 등으로 생활환경이 나빠져 인구 유출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산업성의 ‘2030년 지역경제 시뮬레이션’ 보고서는 일본 도시 가운데 경제 규모가 늘어나는 곳은 도쿄 등 35곳뿐이며 나머지 87%의 도시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양적 팽창에서 콤팩트 시티로 선회

일본은 1994년부터 시정촌을 통합하고 중견도시를 합병하면서 도시 규모를 유지하는 정책을 폈다. 지방 상권을 살리기 위해 1998년 역 주변 시가지를 정비하는 내용의 ‘중심시가지 활성화법’을 제정했고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했다.

가가 교수는 “이런 대대적인 노력에도 지방 도시를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대형 쇼핑몰과 행정기관을 교외로 이전하면서 시가지가 확대된 지방 도시들이 불어난 몸집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인구 감소로 세수가 급격히 줄면서 확장된 도시에 맞게 공공서비스, 공공투자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도야마(富山) 현의 현청소재지 도야마 시와 야마가타(山形) 현의 중소도시 쓰루오카(鶴岡)는 콤팩트 시티의 대표적 사례. 도야마 시는 일본 최초로 고령자를 위해 바닥을 낮춘 경전철(LRT·Light Rail Transit)을 설치해 도심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인구 14만 명의 쓰루오카는 5년 전부터 교외로 나갔던 주택단지와 시청을 비롯한 공공기관, 종합병원, 대학 등을 도심으로 전부 불러들였다. 교외에 있던 주택을 철거해 다시 논밭으로 만들 정도. 모타니 참사역은 “일본은 주거·업무·상업·공공서비스 등 도시 기능을 한 곳에 집중해 어정쩡한 교외 지역을 개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는 복합단지 개발 형태로 콤팩트 시티를 추구하고 있다. 경제성장기에 인구가 교외로 빠지면서 공동화됐던 대도시 도심으로 다시 인구가 돌아오는 역(逆)도넛화 현상이 나타나면서부터다.

저층 오피스건물과 낡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도쿄 미나토(港) 구의 도라노몬 지구는 지난달 철거에 들어갔다. 4년 뒤 이곳은 초고층 오피스빌딩, 호텔, 아파트, 상업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복합단지로 바뀐다. 인근에 들어선 롯폰기힐스나 도쿄 미드타운도 대표적 복합단지다.

오니시 교수는 “직장 근처에서 살기를 원하는 맞벌이 부부와 싱글족, 의료 문화 쇼핑 등 편의시설이 많은 도심을 선호하는 고령층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며 “버블 붕괴에 따른 땅값 하락이 맞물리면서 도심회귀 현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사카 시도 최근 오사카 역 북쪽 지구의 4만 m² 용지를 재개발해 업무시설 상업시설 주택 호텔 등이 합쳐진 복합단지 개발에 들어갔다.

○ “인구 성장기 시절 도시개발 멈춰야”

가가 교수는 “콤팩트 시티가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적합한 도시개발 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일본에서는 ‘아름다운 축소’라는 표현을 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구 감소 시기가 8년여밖에 남지 않은 한국은 여전히 수도권에서 10여 개의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지방에서도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으로 도시 외형을 넓히는 팽창 위주의 도시계획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신도시와 택지개발 사업을 전국 곳곳에서 벌여놓았지만 계획만 세운 채 방치된 곳이 수십 군데. 수도권에서도 9개 택지개발사업이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오니시 교수는 “한국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며 “인구 성장기에 적합한 양적 팽창 위주, 외형 확장의 도시계획을 전면 재검토하지 않으면 재앙을 맞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도쿄·오사카=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