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명 오늘 상장… 공적자금과 ‘아름다운 이별’ 눈앞에

  • Array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3조원대 부실 딛고… ‘시장 통한 공적자금 회수’ 모범사례로

3조5500억원 투입후 10년
새 주인 찾아 기업 가치 높여
다른 회수작업에 긍정 영향

주가 1만743원 넘어야
남은 2조3000억 회수 가능
전문가 “주가 변동성 크다”

자산 56조 원으로 국내 보험업계 2위인 대한생명이 17일 코스피시장에 상장된다. 1999년 7월부터 2년에 걸쳐 3조55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24.75%의 지분을 보유한 예금보험공사는 이번 상장으로 증시에서 직접 주식을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됐다.

대한생명의 상장은 대형 보험사의 증시 등장이라는 차원을 넘어 외환위기가 남긴 어두운 유산(遺産)인 공적자금 회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정부가 부실투성이의 금융회사를 민간에 매각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보유지분을 불특정 다수의 일반 투자자에게 제값에 파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이라는 불편한 이유로 연(緣)이 맺어진 정부와 민간기업이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아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 공적자금 회수의 모범사례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 들어간 1997년 말 이후 도산 위기에 빠진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정부는 1999년부터 순차적으로 공적자금 회수에 나섰다.

하지만 제일은행 외환은행 현투증권 한투증권 대투증권 매각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의 공적자금 회수는 정부 지분을 특정 기업이나 펀드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장외(場外)에서 개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다 보니 거래의 투명성이 떨어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처럼 ‘헐값 매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대한생명의 상장은 공적자금 회수기법의 진화를 상징한다. 정부로서는 지금까지 투입한 돈을 돌려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주가가 오를 경우 더 많은 금액을 회수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증시를 통해 지분을 매각하기 때문에 투명성도 당연히 높아진다. 증시전문가들은 정부가 증시 상장이라는 안전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황을 봐가며 △블록세일(정해진 가격에 지분을 쪼개 파는 것) △장내 지분 매각 △지분 일괄 매각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른바 ‘꽃놀이패’를 쥐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예보는 감사를 대생에 파견해 경영에 일부 관여해왔지만 상장 이후 공적자금이 전액 회수되면 대생은 명실상부한 민간기업으로 독자행보를 하게 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공적자금은 부실한 회사에 넣은 돈이라 제대로 돌려받기 힘들었다”며 “대생이 성공적으로 상장해 국민의 세금을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생의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인 하이닉스반도체와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이자까지도 돌려받을 수 있어

주식공모 과정을 거치면서 대생의 지분은 한화건설(24.88%) 등 한화그룹 50.25%, 예금보험공사(정부) 24.75%, 해외투자자 12.25%, 국내 기관투자가 2.75% 등으로 재편됐다. 만일 대생의 상장 이후 주가가 기대치만큼 형성돼 정부 지분 전량을 주식시장에 내다 팔면 정부는 자연스럽게 시장을 통해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현재로선 정부가 언제 공적자금을 전액 회수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17일 첫 상장일 주가가 얼마에 형성될지에 따라 예보의 공적자금 회수 일정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대생의 공모가가 한화의 기대보다 낮은 주당 8200원이었지만 상장 첫날의 시초가는 90∼200%, 즉 7380∼1만6400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일단 장이 열려봐야 가늠할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 서보익 연구원은 “상장 초기에는 주가 변동성이 크다”며 “초기 주가가 공모가 근처에서 낮게 형성되면 앞으로 주가는 오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예보는 보유 주식 24.75%를 상장 6개월 이후부터 주식시장에서 팔아 회수할 수 있다. 회수할 공적자금(2조3000여억 원)을 보유 주식 수(2억1496만2000주)로 나누면 대생의 주가가 1만743원을 넘어야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론상으로는 주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예보가 가져가는 금액도 늘어나 이자까지 챙길 수도 있지만 대량 지분 매각이라는 변수가 있어 향후 주가는 ‘예측불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예보 금융정리부 홍준모 팀장은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만큼 적어도 원금은 회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국가부도 위기에서 공적자금 투입으로 경제시스템을 안정시킨 것만으로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효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1946년 토종 생명보험사 1호로 설립돼 한국 보험업계를 이끌어 왔던 대생은 1997년 말 외환위기로 보험해약 건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경영진이 계열사에 대한 부당대출과 외화 밀반출로 구속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결국 3조5500억 원의 공적자금을 수혈 받은 대생을 한화그룹이 2002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지분 67%를 팔아 1조820억 원을 회수한 바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공적자금 총 168조원… 회수율 57% 그쳐
조흥銀 매각 그나마 성공사례
1조 투입 수협, 회수는 제로▼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를 내면서 외환위기의 서막이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1997년 11월을 전후해 삼미, 진로, 기아, 해태 등 중대형 그룹들의 도산이 이어졌다. 30개 대기업 중 17개사가 문을 닫았다.

그 여파가 은행에 미쳤다. 부도가 난 기업들의 주식과 채권을 갖고 있던 은행들이 보유자산의 폭락과 대출 연체율 급등으로 연쇄도산 위기를 맞은 것. 결국 정부가 나섰다. 정부는 대기업의 부도로 금융회사까지 망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함께 ‘공적자금’을 처음으로 조성했다.

캠코는 금융회사가 가진 부실기업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예보는 출자 등의 방식으로 금융회사를 정상화시켰다. 이 덕분에 대형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대부분 털어내고 클린뱅크로 거듭났다. 그 대신 대우, 한보 등 대기업들은 채권자가 은행에서 캠코로 바뀌어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당시 공적자금은 대한생명뿐 아니라 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 조흥은행, 서울보증보험, 수협, 제주은행 등 상당수 금융회사에 투입됐다. 정부가 올해 1월까지 투입한 공적자금은 모두 168조6000억 원. 특히 우리금융지주와 서울보증보험에는 10조 원 안팎의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회수율은 신통치 않다. 현재까지 96조2000억 원(57%)을 회수했을 뿐이다. 2조7000억 원이 투입됐던 조흥은행을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하면서 4조1700억 원을 회수해 150%의 회수율을 보인 게 그나마 꼽을 수 있는 성공사례다.

예보는 지난해 11월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7%를 주당 1만5350원에 매각해 공적자금 8660억 원을 회수했다. 이를 통해 예보의 우리금융 지분은 73%에서 66%로 감소했다. 지금까지 우리금융지주에 투입된 12조8000억 원의 공적자금 중 4조 원이 회수됐다. 정부는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금융의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다.

서울보증보험에는 10조2500억 원을 투입했지만 2008년 말 현재 약 10%에 해당하는 1조2900억 원을 회수한 데 그쳤다. 1조1581억 원을 투입한 수협에서는 아예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정부는 올해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더욱 적극적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적자금 관리계획 관련 업무보고를 통해 “시장 상황을 고려하되 매각이 준비된 금융회사와 기업부터 순차적으로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오바마 “公자금 철저환수는 대통령 임무”▼
■ 해외의 공적자금 회수사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공적자금을 사용한다.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국민의 세금을 동원해 ‘마중물’을 붓는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혈세(血稅)를 부실회사에 투입한 만큼 위기가 지난 뒤 이를 회수하는 것은 정부의 과제로 남는다.

미국 정부는 올해 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 7000억 달러 중 손실이 예상되는 1170억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인 금융회사 50곳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국민에게 빚진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거둬들이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이처럼 강경한 조치를 들고 나온 것은 1980년대 후반 부실화된 저축대부조합(S&L)을 처리하기 위해 구조조정 자금 1457억 달러를 투입했다가 80%를 회수하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금융위기를 겪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는 정부 출자 금액을 100% 넘게 회수해 대조를 이뤘다.

정부가 적절한 회수 방안을 세우지 않고 공적자금을 투입한 경우 회수가 기약 없이 늦어지기도 한다. 스페인은 1977년 금융위기를 맞아 투입한 구조조정 비용을 2003년까지 61%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한 멕시코는 2000년대 초까지 원금 회수는 포기하고 이자만 받으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금의 비중을 점차 줄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