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위 긴급생활자금 대출 한달새 38.6%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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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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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서민
지난달 대출액 첫 50억원 돌파
“못 갚으면 끝장” 연체 2% 그쳐

막막한 기금
재원 624억 중 겨우 100억 남아
원리금 들어와도 두달이면 ‘바닥’

최모 씨(43)는 한 금형업체에서 기술직으로 일하다 최근 권고 해직을 당했다. 당장 생활비 마련이 막막해졌다.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일자리는 없었고,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인 탓에 금융회사도 그를 외면했다. 결국 지난달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에서 300만 원의 긴급생활자금을 빌려 가족들을 굶기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다.

수도권 중소도시에서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는 강모 씨(32·여)는 최근 황당한 도난 사고를 당했다. 이혼 뒤 어렵게 장만한 유일한 생계수단인 노점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통째로 사라진 것.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도둑질을 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다. 다행히 주변의 소개로 500만 원의 긴급생활자금 대출을 받아 노점을 다시 차릴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곤두박질쳤던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서민경제에 부는 삭풍(朔風)은 오히려 더욱 매서워지고 있다. 은행 등 제도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늘면서 긴급생활자금을 빌려달라는 ‘SOS’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

12일 신복위에 따르면 지난달 긴급생활자금으로 빌려준 돈은 50억300만 원으로 한 달 전(36억800만 원)보다 38.6%나 늘었다. 신복위가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1인당 500만 원 한도 안에서 긴급생활자금 대출을 시작한 2006년 11월 이후 월 대출금이 50억 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출을 받은 사람도 1월에는 1211명으로 예년 수준이었지만 지난달에는 1605명으로 껑충 뛰었다.

신복위 측은 지난해 8월 대출금이 44억8200만 원까지 치솟은 뒤 작년 11월부터 30억 원대 수준으로 내려가 대출 수요가 진정된 줄 알았다가 다시 급증세를 보이자 당황해하고 있다. 신중호 팀장은 “겨울철 일자리 부족 같은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대출 증가세가 너무 가파르다”며 “저소득층의 경우 아직 경제위기 터널에 갇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긴급생활자금을 빌려 쓰는 사람들은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하고 수입도 일정치 않은 저소득층이지만 연체율은 예상 밖으로 낮다. 지난달 말 기준 연체율은 2.0%로 작년 말 현재 전업 신용카드사의 연체율(2.23%)보다도 낮다. 신복위 관계자는 “긴급생활자금까지 갚지 못하면 영원히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정말 눈물겨울 정도로 대출금을 꼬박꼬박 갚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자녀 수술비 500만 원을 3년 상환 조건으로 빌렸던 김모 씨(42)는 매달 버는 150만 원 중 15만1000원을 연체 없이 갚고 있다.

문제는 신복위의 재원이 조만간 고갈돼 대출해주고 싶어도 돈을 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총대출재원은 624억 원이지만 현재 남은 돈은 100억 원뿐이다. 매달 들어오는 원리금 상환액이 7억∼8억 원 수준이고 대출 요구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껏해야 2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규모다.

신복위는 정부의 지원 없이 7개 은행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서 받은 기부금, 미소금융중앙재단 기업은행 STX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의 차입금을 재원으로 대출사업을 해오고 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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