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문화 확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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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2일 10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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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용희 사무처장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용희 사무처장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려는데 웬 장독대가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해 유심히 살펴봤다. 어떤 종교기관에서 설치한 '사랑의 쌀 나누기'장독이었다. 아래에 보니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들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지하철 역사에 장독을 설치하고 그 안에 쌀을 넣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져가라고 만든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가 있었다. '어떤 어려운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그곳에서 그 쌀을 퍼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러 사람의 눈길과 수치심을 견딜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여기서 쌀을 퍼가야 할 만큼 어려운 사람입니다. 저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이런 창피함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사랑의 쌀나눔을 준비한 우리에겐 좋은 마음만 있으되 그 만큼의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며칠 그 장독대를 바라보며 심난하게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드디어 한사람을 목격하게 되었다. 뒷모습을 보건데 40~50대 되어 보이는 점퍼를 입은 남성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분을 얼마간 좆아 갔다. 한손엔 누런 서류봉투가 있었고 배가 불룩한 것으로 보아 쌀을 담았으리라. 그러나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이러저러한 창피함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는지 모른다.

유태인들은 디아스포라에서 형성된 공동기금으로 누군가를 도울 때, 받는 사람에겐 누가 주었는지 모르도록 비밀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고 감사해 하지만 누가 주는지 알 수가 없으니 감사함을 표시할 수도 없다. 왜 이런 전통이 생겼는가? 바로 나눔을 전할 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대학의 K교수님도 어떠한 이유로 유태인 공동체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을 유학시절 수년간 받은 적이 있다. 대학생이었을 때는 그것이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졸업 후 알게 된 사실은 그것이 성적이 우수해서 지급하는 학교의 장학금이 아니라 유태인 공동체에서 주는 '사적인' 장학금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공부를 잘해서 받는 장학금이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서 받게 된 장학금이라 알고 학교를 다녔다면 그 분의 유학생활은 내내 주눅들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한동안 ‘받는자’의 입장보다는 ‘주는자’의 입장에 서 있었는지 모른다. 모금을 많이 하기 위한 불가피한 한계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받는자’의 입장에 대해 더 고민해보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유태인의 지혜와 같이 우리는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인가?

최근 서울시는 ‘희망드림프로젝트(희망플러스통장, 꿈나래통장)’라는 서울형 복지를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복지정책은 그저 주고 마는 형태가 많았다. 그러나 서울시의 희망드림프로젝트는 한번으로 끝나는 나눔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희망플러스 통장은 본인이 일을 해서 매월 20만원씩 3년간 저축하면 모아진 약 700만에 700만원을 서울시와 민간 후원금으로 보태주는 개념이다. 받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1500만원을 받게 된다. 또한 꿈나래 통장은 빈곤의 대물림을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자녀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역시나 본인이 매월 10만원씩 7년간 저축하면 모아진 약 840만원에 840만원을 서울시와 민간후원으로 보태주는 개념이다. 따라서 받는 사람은 1700여만원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자립의 의지가 강할수록 더 지원해 주는 복지제도다.
이미 서구사회는 나눔은 투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그러나 그 투자는 개인적인 물욕을 채우기 위한 투자가 아닌, 사회의 가치에 투자를 해 더 커진 가치를 돌려받는 개념이다. 행복해 지고 싶다면 행복에 투자해야 한다.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에 투자해야 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교육과 환경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희망드림프로젝트는 어려운 이웃의 자립과 성공에 투자(지원)를 해 그들의 자립과 성공을 함께 누리자는 의미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해주자는 취지의 희망드림 프로젝트는, 한번 쓰고 사라지는 소비가 아닌, 작은 나눔으로 큰 행복을 돌려받는 가장 아름다운 투자처다. 이것이 나눔문화 확산의 지름길이요 비밀이다. 이 비밀을 우리 국민 모두가 알게 된다면 나눔문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 본 자료는 정보제공을 위한 보도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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