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잘못없는 키코계약 지켜져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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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1라운드 소송서 은행에 완패

재판부 “은행 책임 없다”… 다른 소송에 영향줄 듯
피해기 업 대책위 “형평성 어긋난 황당한 판결” 반발

법원이 8일 환헤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소송에서 은행 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림에 따라 1년 넘게 끌어오던 다른 키코 소송들도 은행의 판정승으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 특히 이번 본안소송 재판은 향후 키코 소송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또 200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엥글 미국 뉴욕대 교수와 스티븐 로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가 각각 기업, 은행 측의 증인으로 나서는 등 석학(碩學)들 사이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면서 관심을 모았던 사안이다.

이날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대상으로 제기한 본안소송에서 법원이 내린 판단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산중공업의 손실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환율 상승 때문에 발생한 ‘기회 이익의 상실’일 뿐 키코 계약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할 근거가 아니라는 판단인 셈이다.

법원은 또 이번 소송의 쟁점이었던 △키코는 환위험 회피에 부적합한 상품이고 △수수료 부과도 부당한 데다 △키코 계약이 불공정 약관이어서 무효이며 △은행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게 행동했다는 기업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히 “계약 체결 당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사후에 초래됐다는 사정만으로 파생금융상품이 환위험 회피에 적정한 것인지 여부를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통화옵션계약 약정서는 개별 당사자 간 협상에 의해 계약조건이 결정되는 장외 파생상품계약이므로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른 약관 심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금융감독원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은행 측은 이날 판결에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앞으로 이어질 키코 소송에서도 승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은행으로서는 긍정적 판결이지만 키코 상품이 회사마다 계약내용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다른 소송도 이길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키코 피해 중소기업의 모임인 환헤지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날 “형평성에서 벗어난 판결”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공대위 관계자는 “완전 승소까진 아니더라도 재판부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힌 접근을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너무 황당한 판결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부가 피고인 은행 측에 키코 상품의 수익 구조와 관련된 핵심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은행 측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며 재판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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