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공짜로 보세요” 4개월뒤 해지 요청하자 “위약금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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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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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객 뒤통수 치는 통신회사들
무료 사용에 동의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약정 이뤄져
유무선통신 관련 민원 많아

“자기 고객의 뒤통수를 치는 회사도 있나요.”

통신업체 LG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인 주부 이현희 씨(36)는 얼마 전 상담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담원은 서비스를 이용해 줘서 고맙다며 보답으로 한 달간 인터넷TV(IPTV)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줬다. 무료 기간이 지나 해지하려 하자 이번엔 다른 상담원이 3개월 더 무료로 보라고 권했다. 이 씨는 결국 4개월 동안 무료로 IPTV를 봤다.

문제는 해지였다. 회사 측이 이 씨에게 위약금 2만 원을 요구한 것이다. ‘4개월간 무료로 사용하려면 3년 약정이 필요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씨가 무료 사용에 동의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약정이 이뤄졌던 것. 물론 이 씨는 약정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이 씨는 “처음엔 호의를 베푸는 것 같더니 나중에 말을 바꿨다”며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했다.

○ 각종 계약으로 고객의 발목을 잡다

유무선 통신사의 합병, 스마트폰과 무선인터넷의 확산 등 최근 국내 통신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KT,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텔레콤 등 국내 통신업체들은 현금을 지급해 경쟁사 고객을 빼앗아 오는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을 지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해외시장 개척 등 새 수익모델을 만들겠다고 선언해 좋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무대 뒤’에선 여전히 구태를 보이고 있다. KT의 유선전화를 쓰는 오모 씨는 최근 상담원이 기존 전화를 통화료가 싼 인터넷전화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해 전화를 바꿨다가 통화 품질이 떨어져 원상 복귀를 요구했다. 그랬더니 KT 측은 “한 달도 안 돼 해지하는 건 계약 위반”이라며 위약금을 요구했다.

SK브로드밴드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인 김모 씨(31)도 이 회사 상담원으로부터 IPTV 2개월 무료사용 혜택을 받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다른 상담사로부터 “3년 약정 가입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2개월 무료 서비스에 3년 약정 가입 전제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무선 통신 관련 부당행위 민원 건수는 587건에 이른다. 가입할 때는 상담사가 귀찮을 정도로 상세히 혜택을 안내하지만 무료계약이 종료되면 문자메시지 하나 달랑 보내는 사례가 많다. 또 상담원이 이용자에게 약정 안내를 후다닥 말한 뒤 이를 녹취했다가 나중에 고객이 항의하면 들이대기도 했다.

▼ 마케팅경쟁 치열한 연초에 피해 많아 ▼

○ 남의 고객 뺏기 대신 자기 고객 덤터기 씌우기?

이런 일이 끊이지 않는 건 통신업계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경쟁구도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겠다고 했지만 해외시장 진출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다.

시기적 요인도 있다. 통신업계는 매년 초 가장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인다. 연말 실적 결산을 앞두고 매출과 이익 규모를 보기 좋게 다듬어 놓느라 줄였던 마케팅 비용을 새해 시작과 함께 아낌없이 퍼부으며 고객 유치에 나서는 것. 올해도 같은 일이 되풀이될 뻔했는데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통신 3사가 지출한 마케팅 비용만 8조 원이 넘는 등 무리한 보조금 경쟁에 문제가 있다”고 제동을 걸면서 타사 고객 빼앗기는 중단됐다. 그 대신 자사 고객에게 새로운 서비스에 가입하게 하는 데 돈을 쓰고 있다. 최근 소비자 피해 사례 대부분이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이홍민 인턴기자 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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