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애플, 한국 특허기술에 무릎 꿇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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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 전자통신硏 기술 무단사용 시인… 특허료 일부 지불

미국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어 팔면서 한국이 갖고 있는 특허기술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애플 노키아 모토로라 등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업체 22개사를 상대로 최대 1조 원 규모의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 중인 가운데 애플이 지난해 말 ETRI에 특허 기술료 일부를 지급한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ETRI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인 애플 등으로부터 특허 기술 사용료를 받게 된 것은 한국이 비로소 특허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외 특허 소송에 밝은 복수의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애플이 비공개를 전제로 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의향을 밝혔으며 이미 그 가운데 일부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애플이 앞으로 지급할 특허 기술료의 총액은 아이폰의 매출에 따라 달라진다.

ETRI는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등 3세대(3G) 이동통신 관련 7개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ETRI는 이 가운데 4건을 이번 소송 대상으로 삼았다. 4건 모두 동영상 등으로 전력 소모가 많은 3G 휴대전화의 전력 소모량을 20% 정도 줄여 배터리를 오래 쓸 수 있게 해 주는 기술과 관련이 있다. 이 기술은 대부분의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ETRI는 애플 외에도 최근 공개된 구글의 첫 휴대전화 ‘넥서스원’을 생산하는 대만 HTC로부터 이미 900만 달러의 특허 기술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HTC는 “특허 기술료에 웃돈을 더 얹어줄 테니 앞으로 소송은 하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과 HTC 등이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실을 시인함에 따라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다른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 로열티 내던 ‘IT 한국’, 이젠 특허료 받아

ETRI는 현재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에릭손 교세라 등 세계적인 휴대전화 업체 대부분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ETRI는 1996년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상용화했다. 하지만 원천기술은 미국 퀄컴사가 갖고 있기 때문에 국내외 제조업체들은 퀄컴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동통신 기술이 3G로 진화하면서 ETRI는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해 이제는 로열티를 버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게 됐다.

ETRI가 특허 소송을 시작한 것은 2008년. 자신의 특허 기술을 글로벌 휴대전화 업체들이 무단으로 사용하면서 특허 기술료를 하나도 지급하지 않는 것을 바로잡아 보겠다는 취지였다. ETRI는 3G 휴대전화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2005년부터 관련 특허를 보완하고 건당 최대 1000만 달러가 드는 소송 비용도 마련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ETRI 관계자는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와의 소송은 국익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TRI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서 최소한 3억 달러 이상의 특허 기술료 수입을 기대하는 한편 해외 업체들을 대상으로 4세대(4G) 이동통신 기술 특허권 침해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ETRI는 170건의 국제표준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국제표준으로 추진 중인 기술은 300건이 넘는다. 국제표준 특허는 건당 약 1000만 달러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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