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녹색 좌파, 녹색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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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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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우측이나 좌측 깜빡이를 켜고 반대로 핸들을 돌리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정치는 꼭 그렇지는 않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때론 역사에 남는 업적을 남긴다.

외환위기 당시 재벌개혁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해고 규정을 완화시킨 노동개혁이었다. 만약 우파 정부가 추진했다면 노동계로부터 사생결단의 저항에 직면했을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도 그렇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 놓고도 ‘광우병 파동’을 겪은 우리다. 만일 우파 정부가 한미 FTA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면 첫 단추도 채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되풀이된다.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한국이 경제위기를 헤쳐 나온 배경에는 정부가 대기업에 해고를 자제하라고 요청했고 대기업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 주효했다. 작년 말 대기업이 앞 다퉈 사람을 잘랐다면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는 불안정한 정치상황이 왔을 것이다. 이런 한국의 정치적인 지형도에서 서민친화적인 정책이나 사회 안전망의 완성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 정부에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일지 모른다.

‘깜빡이 반대 방향으로 핸들 꺾기’의 절정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이다. 정부는 17일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 대비 30%를 줄이기로 확정했다. 좌파정부가 추진했다면 기업들은 “좌파정부가 기업을 옥죈다”며 크게 반발했을 것이다. 재계의 막강한 여론 형성 능력을 감안하면 ‘세종시’나 ‘4대강 살리기’보다 더 격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사실 환경문제는 좌파가 개발한 어젠다다. 이 때문에 ‘성장은 환경 보전의 반대’라는 도식이 각인돼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쇠퇴해가는 국가 경쟁력을 녹색산업으로 상쇄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이제 녹색은 성장의 키워드로 바뀌고 있다. 이 파도에 올라타지 못하면 한국은 주변 국가로 밀려나기 쉽다. 정보기술(IT) 물결을 타지 못한 한국을 상상해보자.

반대로 녹색성장 정책이 성공하면 10년째 해답을 찾지 못한 여러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신성장산업의 발굴’ ‘일자리 창출’ ‘토건국가에서 지식국가로’ ‘성장일변도에서 삶의 질로’ ‘세계사에 기여함으로써 국가 품격의 도약’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정책의 첫 시작은 기업이 반대하기 힘들고 성장 메커니즘을 잘 아는 우파정부가 맡는 것이 절묘한 수순이다. 겁먹지 않고 들여다보면 녹색산업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이는 필생의 과업이다. 개발독재시대를 상징하는 건설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커온 그가 과거의 성공도식에 매몰되지 않고 토건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4대강을 운하개발을 통한 물류 혁신으로 접근한 것은 심각한 패착이었다. 처음부터 녹색으로 콘셉트를 잡았어야 했다. 이제 야당도 4대강 살리기를 백지화하기보다 녹색의 관점에서 감시하고 정부가 딴생각을 품으면 채찍질하는 것이 긴 안목에서 옳다.

세종시 문제도 온실가스 배출 제로인 녹색성장의 메카 건설이라는 아이디어가 들어갔으면 한다. 성공만 하면 21세기 최고 관광지의 탄생이라는 보너스까지 챙길 수 있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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