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복수노조 도입 초비상… 임단협 모의 협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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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내년 1월 시행되는 복수노조는 지금까지의 노사관계를 크게 바꿀 것으로 관측된다. 기업들도 모의 임단협을 하거나 노무담당 임직원 세미나를 여는 등 복수노조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직무별 사업장별 노조가 늘어 파업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지만 운영 여하에 따라 원만한 노사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내년 1월 시행되는 복수노조는 지금까지의 노사관계를 크게 바꿀 것으로 관측된다. 기업들도 모의 임단협을 하거나 노무담당 임직원 세미나를 여는 등 복수노조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직무별 사업장별 노조가 늘어 파업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지만 운영 여하에 따라 원만한 노사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변수 워낙 많은데다 정부 보완책 불분명해 불안”
‘복수노조’ 日도요타-佛르노 원만한 노사관계 유지
재규어 17개 노조 레이스식 경쟁으로 노사공멸


내년 1월 시행될 복수노조 제도는 지금까지의 노사관계를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정 6자 대표자 회의가 성과 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세부적인 보완책 없이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될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 “파업 많아져 생산성 하락 불가피”

무(無)노조 경영원칙을 유지해 온 삼성그룹은 최근 각 계열사의 노무담당 임직원 세미나와 워크숍을 잇달아 개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포스코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진 노사문화’를 주제로 한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SK그룹도 내부 교육을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노사협상 경험이 많지 않은 일부 기업은 ‘모의 임금·단체협상’까지 실시했다. 한 대기업 노무 담당자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워낙 변수가 많고 정부의 보완책도 명확하지 않아 대응책을 마련한다기보다 모여서 걱정을 나누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기업은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직무별, 사업장별 노조가 늘어나 파업이 많아지고 노조 사이의 교섭권 확보를 위한 선명성 경쟁으로 대립이 늘어나는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 강원산업을 인수해 5년여간 복수노조 체제를 유지했던 INI스틸(현 현대제철)은 인천노조가 임금인상을 관철시키면 포항노조가 이에 더해 복리후생을 경쟁적으로 덧붙이는 ‘레이스식 교섭’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재규어로 알려진 영국 자동차회사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최대 17개 노조가 레이스식 교섭을 벌이는 바람에 경영이 악화됐다. 영국을 대표하던 브랜드인 재규어는 결국 2000년 해외에 팔렸다.

조종사, 일반직, 정비직, 객실 승무원 등 직종별로 8개의 노조가 있는 일본항공(JAL)은 2006년 3월 회사가 고(高)유가와 경영권 분쟁으로 위기를 맞자 타개책으로 10% 임금삭감을 추진했다. 1만여 명이 가입된 최대 노조는 이에 동의했으나 나머지 노조의 반발로 합의가 불발돼 JAL은 위기탈출에 차질을 빚었으며 지금까지 경영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인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호에서 “채권은행이 고비용 경영구조를 지적하고 있지만 노조의 영향력 때문에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JAL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처럼 몰락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2000년 복수노조를 허용한 인도네시아는 시행 1년 8개월 뒤 1만 개 이상의 노조가 새로 설립됐다”며 “2003년 말까지 100개 이상의 외국 기업이 인도네시아를 떠났다”고 말했다. 남용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대책본부장은 “일찌감치 복수노조를 도입한 유럽, 일본의 기업들은 몇 년간 혼란을 겪다가 안정됐지만 글로벌 경쟁이 심화된 지금 한국은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 제도 운영에 따라 긍정적 방향으로 갈 수도

노동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줄어든 이유를 복수노조 허용에서만 찾으려는 것은 무리”라며 “당시 동남아시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원인”이라고 말했다.

노사가 복수노조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원만한 노사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에는 2개의 노조가 있지만 1950년 파업을 마지막으로 무분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 르노자동차 역시 5개의 노조가 있으나 원만한 노사 관계를 이어가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복수노조가 자연스럽게 단일화된 사례도 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長崎) 조선소에는 이념 대립이 심하던 1950년대 무려 32개의 노조가 난립해 혼란을 겪었으나 1968년 단일화됐다.

특정 노조가 맺은 협약에 대해 다른 노조가 반대해 파업을 벌이는 등 난맥상이 나타나자 보완 제도를 도입한 사례도 있다. 에어프랑스는 직종 및 지역별로 19개 노조가 난립해 파업이 잦았다. 이런 사례가 많아지자 프랑스 정부는 2004년 기존의 협약에 반대하는 다수 노조가 파업에 앞서 회사 측과 재협의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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