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못빌리는 ‘서민 생계비 융자’

  • 입력 2009년 9월 22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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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담보대출사업, 이미 담보 많이 잡힌 서민엔 ‘그림의 떡’… 대출 집행률 2.6% 그쳐
실직가정 생활자금도 저조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 탓”

올해 4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당시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로 매우 낮지만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가족부는 소득이 최저생계비(1인 기준 월 약 48만 원) 이하인 저소득층이 보유한 주택과 건물, 토지, 전세보증금 등이 2억 원 이하일 경우 이를 담보로 생계비를 대출해주는 제도를 마련했다.

정부는 추경 편성이 끝나는 올해 5월부터 12월까지 모두 20만 가구가 평균 500만 원씩 이 제도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 대출금만 무려 1조 원에 달했다. 금융기관의 대출금 이자(7%) 중 정부가 4%를 대신 갚아주기로 하고, 정부는 2009년 추경예산에 신용보증출연금 명목 등으로 우선 639억 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실제 대출은 8월 말까지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2700여 건에 그쳤다. 대출금도 261억 원에 불과했다. 대출건수 기준으로는 예상치의 1.4%, 대출금은 예상치의 2.6% 정도밖에 안 됐다.

제도 시행 초기엔 복지부로 문의전화가 쏟아졌지만 이젠 저소득층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무엇보다도 저소득층이 이미 담보 대출을 신청한 상태여서 추가 담보 대출을 받을 경우 금융당국이 정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초과하는 바람에 대출 심사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의 동의가 필요한 전세보증금 대출의 경우 주인들이 동의를 꺼려 대출 신청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대출이 막힌 저소득층이 정부나 민간의 다른 대출 제도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노동부의 실업급여 대책도 비슷한 실정이다. 노동부는 추경예산 편성 당시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지표가 나빠졌을 경우에 대비해 올해 추경예산 편성 때 각종 실업급여로 1조5382억 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8월 말까지 집행된 돈은 1634억 원(10.6%)에 불과했고 나머지 돈은 그대로 남았다. 특히 실업급여 중 외환위기 때처럼 경기상황이 나빠졌을 때 실업급여를 추가로 제공하는 특별연장급여를 6700억 원이나 확보했지만 이 항목의 사용 실적은 전무했다.

실직 가정을 위한 생활안정 자금 대부 대출금도 마찬가지다. 4만5500명에게 600만 원씩을 지원할 목적으로 2730억 원을 편성했지만 8월 말까지 370억 원(13.6%)만 집행됐다. 재산현황 신고와 배우자 소득 현황 등 까다로운 대출금 조건을 맞춰낼 실직 가정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이처럼 정부가 경기 침체를 대비해 다양한 서민지원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서민이 못 빌려가는 비현실적인 제도가 돼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불필요한 추경예산만 편성해 추경예산의 집행률을 낮추는 결과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대출 조건을 완화하고 있지만 집행실적이 얼마나 올라갈지는 미지수다.

이 같은 사실은 21일 동아일보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부산 수영)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유 의원은 “정부의 예산 계획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지나치게 부풀려진 데다 지원 대상자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며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예산이 가지 못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가 예산편성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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