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은 밀리고… 글로벌 경쟁시대 한국기업들은 지금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6분


■ 임상시험 승인자료 분석

《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이 매년 평균 30% 이상 성장하고 있지만 절반에 가까운 48%가 신약이 아닌 복제약(제네릭) 임상시험인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16일 발표한 ‘2009년 상반기 임상시험 승인 분석자료’에서 확인된 결과다. 복제약과 신약을 구분해 통계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임상시험을 의뢰한 업체나 연구자가 국내 제약사 또는 국내 연구자인 경우는 87건으로 다국적 제약사가 의뢰한 임상시험 82건을 앞섰다.》

규모 작은 국내 제약사들 신약 대신 복제약에 치중
美화이자 연구비만 10조원 - LG생명과학의 160배 넘어
정부 “R&D 세제혜택 방침”

국내 제약산업 연구개발(R&D)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국내 제약사들의 취약한 경쟁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 3년간 국내 의약품 임상시험 시장은 2006년 218건, 2007년 282건, 2008년 400건으로 매년 30%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국내 제약사의 임상시험은 복제약 개발에 치중돼 있는 반면 다국적 제약사는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주로 진행하고 있었다.

국내 제약사의 임상시험 가운데 48%는 복제약 임상시험이었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사들은 75%가 신약 임상시험이었다. 또 국내 제약사는 1곳당 평균 1.24건의 임상시험을 신청한 반면 다국적 제약사는 1곳당 평균 3.5건을 신청했다. 국내 제약사는 여러 곳에서 복제약의 성능을 시험하는 ‘자잘한’ 임상시험을 했지만 다국적 제약사는 몇몇 업체가 집중적으로 ‘굵직한’ 임상시험을 추진하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제약사의 임상시험은 동물실험을 끝내고 사람에게 처음 적용하는 1상 임상시험이 43%로 가장 많았다. 보령제약 7건, 한미약품 6건, LG생명과학이 4건으로 상위를 차지했다. 다국적 제약사 임상시험은 상업화의 전 단계로,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최종 효능을 검증하는 단계인 3상 임상시험이 61%로 가장 많았다. 한국화이자제약이 10건, 퀸타일즈트랜스내셔널코리아 8건, 바이엘코리아 8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신약 개발에 수조 원대의 R&D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영세한 국내 제약산업이 감당하기에는 벅차다고 지적한다. 국내 제약업체 중 R&D 투자액 1위인 LG생명과학은 지난해 매출의 21.6%인 608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한미약품(566억 원)과 종근당(277억 원)도 매출액의 10%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투자로는 신약 개발이 쉽지 않다. 지난해 다국적 제약사 R&D 투자액 1위를 기록한 미국 화이자는 무려 10조 원을 R&D에 쏟아 부었다. 노바티스와 로슈는 각각 9조1200억 원을 투자했다. 로슈의 경우 매출액의 34%나 R&D 비용으로 투자했다.

설령 신약물질을 개발했다 해도 실제 임상시험 단계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하는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김성호 식약청 임상제도과장은 “신약물질 1만 개를 찾아낸다고 하면 이 중 한두 개가 신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R&D 투자를 꺼린다는 분석도 많다. 일반적으로 다국적 제약사들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평균 20%에 이르지만 국내 제약사의 경우 6%에 불과하다. 이런 영세한 구조 때문에 국내 제약업체들은 제네릭 개발이란 ‘편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지난달 출시된 한미약품의 ‘아모잘탄’을 예로 들면, 원래 신약 주성분의 염기서열만 바꿔 만든 ‘아모디핀’과 ‘오잘탄’을 섞어 만든 복합형 개량신약이다.

특허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런 개량신약인데도 2004년부터 5년 동안 연구인력 350명이 참여해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뒤에야 빛을 본 것이다. 만약 신약 개발에 도전한다고 하면 이보다 몇백 배의 비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한국에서 개발된 신약은 SK제약 ‘선플라주’, LG생명과학 ‘팩티브’ 등 14개에 불과하다.

한국이 제네릭 시장에 먼저 도전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 개량신약, 제네릭 시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인도의 란박시나 이스라엘 테바처럼 제네릭만으로도 규모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의료개혁에 거는 기대도 크다. 미국이 의료개혁에 성공하면 의료비 절감을 위해 값이 싼 제네릭을 많이 찾을 테고, 국내 업체들의 수출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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