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는 억울합니다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고기생산用 ‘얼룩 수소’
수입산-한우 사이 샌드위치
한우둔갑 잦고 소비자는 외면

저는 육우(肉牛)입니다. 1902년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홀스타인’ 품종.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국내산 소’가 된,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면하는 처량한 신세입니다. 저는 말 그대로 ‘고기’를 만드는 ‘소’입니다. 업계에선 ‘고기 생산을 주목적으로 사육된 얼룩소 수소’라고 정의하기도 하죠. 쉽게 말해 ‘남자 얼룩소’인 셈입니다. 얼룩소 중 우유를 만들어내는 암소는 젖소입니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시는 쇠고기를 한우고기, 젖소고기, 육우고기, 수입육 등 네 가지로 나눕니다. 따라서 한우고기와 젖소고기를 제외한 모든 국내산 쇠고기는 육우고기입니다. 육우고기는 한우보다 30∼40% 싸고, 수입육보다는 30∼40% 비쌉니다. 그래서 일부 비양심적인 유통업자들이 저를 한우로 둔갑시키는 겁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육우를 육우라고 떳떳이 밝힐 수 없는 신세가 서럽습니다.

몇 년 전엔 일부 롯데마트 진열대에 올랐다가 쫓겨났습니다. 싼 수입육에 밀려서죠.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한우 농가는 17만5611곳인 반면 육우 농가는 5866곳에 불과합니다. 한우에 비해 사육 규모가 작아 유통기반도 미미합니다. 한우와 수입육 사이에 끼인 영락없는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반성합니다. 그동안 한우와 수입육의 틈새에서 시장 차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육우 유통구조는 불투명했습니다. 이제라도 육우농가들이 힘을 합쳐 붕괴하는 국내 육우산업을 일으키려 하니 눈물나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좋은 육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육우協 “대중적 고급육으로 거듭날 것”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16∼18일 전국 유명 호텔과 음식점 177곳에 대해 농축산물 원산지 특별 단속을 실시한 결과 20개 업소가 원산지를 속이거나 표시하지 않았다고 23일 밝혔다. 이 중에는 미국산과 국내산 육우를 혼합해 호주산으로, 국내산 육우를 국내산 한우로 둔갑시킨 경우가 많았다. 이날 한국낙농육우협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육우의 품질을 더욱 향상시켜 대중적 고급육으로서 소비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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