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車업계 지각변동… 창업주들 ‘가문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피아트 - 푸조 - 포르셰 등 합종연횡 본격화
“가문 희생해서라도 생존해야” 지분감소 감내


세계 자동차업체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되면서 창업주 가문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파산과 인수합병, 구제금융의 소용돌이 속에서 회사와 가문을 동시에 살릴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자동차업계의 오랜 ‘가문 경영’의 전통이 약화될 수도 있다”고 8일 분석했다.

○ 가문의 위기

도요타 포드 포르셰 푸조….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의 이름이다. 동시에 창업주의 성(姓)이기도 하다. 수많은 기업이 명멸하는 속에서도 특히 자동차업계는 오랫동안 창업주 가문의 브랜드와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자동차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육성 보호하는 정부의 우산 아래 기업을 확장하며 가문의 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함께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몰리면서 가문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자칫 가문의 입지를 좁힐 수도 있는 위험한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이다. 독일의 포르셰와 폴크스바겐은 6일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이로써 사촌 간인 볼프강 포르셰 회장(포르셰)과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폴크스바겐)의 오랜 대립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탈리아 피아트도 크라이슬러에 이어 GM의 유럽 사업부문인 오펠 인수 협상에 나서는 등 몸집 불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아녤리가(家)를 이끄는 존 엘칸 피아트 부회장이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푸조 가문도 르노자동차 등과의 제휴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가문을 희생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올해 들어 자동차 판매량은 미국에서 3분의 1, 유럽에서 4분의 1이 줄었다. 시장은 작아졌지만 한국 등 후발주자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피아트 측은 “앞으로 6개 기업만 생존할 것이며 연간 생산량이 최소 550만 대는 돼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의 차세대 지각변동에도 대비해야 하는 과제도 떨어졌다. 연료소비효율이 높은 자동차 기술 개발에 뒤처지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주가 하락과 배당금 축소로 허덕이는 오너 가문의 힘만으로는 벅찬 실정이어서 외부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또 경영 실적이 악화돼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국유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

○ 묘수 찾기 부심

회사와 가문을 동시에 살리기 위한 창업주 가문의 행보는 제각각이다.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과감히 결단할 수 있는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려 돌파구를 찾으려는 가문도 많다. 창업주 크반트 가문이 47%의 지분을 가진 독일 BMW는 가문을 중심으로 독자 노선을 모색하고 있다. 지분 매각 요구를 거절하고 합병보다는 경쟁사인 다임러와의 부품 협력 등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빅3’ 가운데 유일하게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지 않은 포드의 독자노선도 기존 주주의 이익을 지키고 포드 가문의 회사 지배를 계속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드는 차세대 소형차 개발에 치중하며 사활을 걸고 있다. 전문경영인을 두고 한발 물러서 있던 도요다 가문도 7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하자 친정체제로 전환했다. 창업주의 증손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차기 사장은 “창업 정신으로 돌아가자”며 위기 돌파를 선언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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