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공급과잉, 반도체 생산량 조절 왜 안되나

  • 입력 2009년 4월 28일 20시 55분


메모리 반도체인 1Gb(기가비트) 667MHz(메가헤르츠) DDR2 D램의 고정거래 가격은 1년반 만에 3분의 1토막이 났다. 2007년 10월 3.0달러에서 올해 4월 0.94달러로 떨어졌다. 다른 반도체의 가격 추이도 비슷하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와 하이닉스는 올 1분기(1~3월) 대규모 적자를 냈다. 국내업계는 그나마 나은 편. 독일 키몬다는 파산절차에 들어갔고 대만 반도체업계는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모든 사태는 몇 년째 이어진 반도체 공급과잉 탓이다. 이는 처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거의 주기적으로 벌어진다. 압도적인 브랜드파워로 내로라하는 인재들을 긁어모은 반도체기업들이 이처럼 '바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격이 곤두박질치는데도 왜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까. 경제탐정이 나서서 이유를 파헤쳐 봤다.

●"반도체산업은 농업"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기사에서 다소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반도체산업이 농업과 닮은꼴이라는 내용이었다.

둘 다 제품이 팔리기 훨씬 전에 투자가 이뤄진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기 전에 1년 뒤 시장 상황을 예측해야 하는 것처럼 반도체 업체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실제로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공정이 시작된다.

또 농부가 쌀값이 떨어졌다고 땅을 놀리지 않는 것처럼 반도체업계도 가격이 생산원가 밑으로 떨어져도 생산라인을 세울 수 없다. 투자비를 조금이라도 건지기 위해 라인을 계속 돌린다.

농업처럼 정부의 지원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도 반도체 공급과잉을 부추긴다. 지금은 파산한 키몬다는 독일 작소니 지방정부에서만 15억 유로(약 2조6550억 원)를 지원받았다. 대만 정부는 아예 타이완메모리(TMC)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중국 정부도 반도체 살리기에 가세하면서 '국가 대항전' 양상을 띠게 됐다.

●'채찍효과'도 가격요동에 한몫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아직 뭔가 부족했다. 아무리 그래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기업을 농부에 빗대는 건 무리가 아닌가. 반도체 수요예측이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을법했다.

경제탐정은 경영학 책을 뒤지다가 '채찍효과(Bullwhip Effect)'라는 항목에서 무릎을 쳤다. 채찍의 손잡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채찍 끝의 움직임은 수십 배가 된다. 제품 생산의 흐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고객에 제일 가까운 단계인 완제품 수요가 조금만 움직여도 가장 멀리 있는 반도체의 수요는 변동성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최근 시장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07년 1월 시장에 나온 윈도비스타는 1Gb(기가비트)가 권장메모리였지만 무리 없이 돌아가려면 적어도 2, 3Gb가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윈도비스타가 히트하면 엄청난 양의 메모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 것. 반도체 업계는 2006년부터 시설투자에 열을 올렸다. 당시 하이닉스는 159%, 엘피다는 103%, 삼성전자는 86%의 설비 증산을 감행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윈도비스타의 인기는 기대에 못 미쳤다. 굿모닝신한증권 김지수 팀장(반도체 담당)은 "윈도비스타로 수요가 늘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투자를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했던 것이 최근 반도체가격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르면 올해 안에 '윈도7'을 선보인다. 최근 공개된 베타버전에 호평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업계는 다시 꿈에 부풀어있다. 경제탐정은 기원해본다. 반도체 업계의 예측이 이번에는 들어맞기를….

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