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SK가 38년째 나무 심는 까닭은…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6분


“조림사업 통해 인재 육성”

고 최종현 회장 뜻 이어

SK그룹은 ‘나무 심는 글로벌 기업’으로 통한다. 재계 서열 3위인 SK의 양대 축은 첨단 비즈니스인 에너지와 정보통신이지만 대표적 1차 산업인 조림(造林)사업을 38년째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당시 서해개발주식회사(현재의 SK건설 임업부문)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꾸준히 나무를 심어왔다.

SK그룹이 보유 중인 △조림지(충북 충주와 영동, 충남 천안) △조경수 단지(경기 화성과 오산) △수목원(경기 이천) △휴양림(강원 횡성) 등의 총면적은 3719만4791m²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면적(848만 m²)의 약 4.4배이다. SK 측은 20일 “보유 수목은 조림수 40여 종, 조경수 80여 종 등 총 150만 그루에 이른다”고 밝혔다.

‘디지털 SK의 아날로그적 나무 사랑’에는 최태원 SK 회장의 부친인 고 최종현 전 회장의 꿈이 담겨 있다. 그는 “벌거숭이산에 나무를 심어 30년 후 고급목재로 자라면 그것을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겠다”며 조림사업에 뛰어들었다. 1973년 충북 충주의 인등산에 최 전 회장이 처음 심은 30cm 크기의 나무는 지금 18m짜리 우량목으로 자라 있다.

최 전 회장의 나무를 통한 인재 양성 구상은 당초 SK 내에서 반대가 심했다. 조림은 투자기간이 너무 길고, 사업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일부 임원들은 “정 해야 한다면 부동산 가치를 고려해 수도권 근처에서 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최 전 회장은 “‘땅 장사’하려는 게 아니다. 수도권은 언젠가 개발될 것이기 때문에 조림사업이 제대로 될 수 없다. 반드시 지방의 산간 오지와 황무지를 개척하라”고 지시했다.

SK의 이런 나무 사랑은 그룹 특유의 인재 육성 문화로 자리잡아갔다. 인등산에 조성된 ‘인재의 숲’을 산행하는 것은 SK 신입사원과 신임 임원들의 필수 교육과정이다. SK그룹은 주요 행사가 있는 날 무조건 나무를 심는다. 지난달 31일 SK의 ‘경영 바이블’인 SKMS(SK경영체계) 정립 30주년 기념식을 마친 뒤에도 최태원 회장과 경영진이 기념식수를 했다.

최 전 회장이 처음 나무를 심은 1973년부터 SK그룹이 고교생 퀴즈 대항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단독 후원하기 시작한 것도 ‘나무 사랑=인재 사랑’이란 ‘최종현식 등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최 전 회장은 장학퀴즈 관계자들에게 “난 30년을 보고 나무를 심는 사람이다. 사람이나 나무나 쓸만한 재목이 되는 데 30년은 걸린다”고 말하곤 했다.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사진)의 조림사업 발언들

―“나무도 사람 키우는 것과 같다. 서양 사람들이 잘 먹기 때문에 체격이 좋은데 나무도 잘 먹이고 보살펴야 잘 클 수 있다. 사람 키우듯 나무를 키워라.”

―“수도권은 분명 (나중에) 개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도권에서는) 조림사업이 제대로 될 수 없다. 황무지 산간오지를 개발해라.”자료: SK그룹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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