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네덜란드 소도시 에인트호번에 세계적 기업 75개…

  • 입력 2009년 3월 14일 02시 58분


네덜란드 소도시 에인트호번에 세계적 기업 75개 몰려든 까닭은

“필립스社를 최우선으로” 기업우대정책 꽃피워

많은 한국인이 네덜란드의 ‘PSV 에인트호번’이란 축구팀을 잘 알고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가 몸담았던 팀이자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었던 구단이다. 전통의 강호들이 즐비한 유럽에서도 축구 명가로 꼽힌다. 이 명문 구단이 ‘필립스’라는 기업의 사내 축구 클럽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에인트호번이라는 소도시에 둥지를 튼 필립스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작은 축구 클럽에 불과했던 PSV 에인트호번 역시 축구 명가로 성장했다.

○ 에인트호번의 성장

에인트호번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130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19세기 말만 해도 인구가 고작 500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892년 ‘필립스 앤드 컴퍼니’라는 조명회사가 들어서면서 마을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 에인트호번 지역의 인구는 73만 명(네덜란드 인구의 4.5%)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지역의 총생산이 네덜란드 국내총생산의 14.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 금액은 네덜란드 전체의 43%를 차지하고 있다.

에인트호번에는 필립스뿐만 아니라 미국의 IBM과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일본 NEC 등 세계 50개국의 75개 첨단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는 에인트호번이 필립스만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적인 지식기반형 기업도시로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 급속한 성장의 비밀

과연 이 작은 도시가 이런 위상을 갖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하이테크 캠퍼스(HTCE)’에서 찾을 수 있다. HTCE는 기업 중심의 산학연 기술 집적 단지로 기업과 연구원 사이의 지적 교류와 지식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장이다.

HTCE 건립은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필립스는 자사 소유의 땅 103만 m²에 2개의 R&D센터를 세웠다. 당시 HTCE는 필립스만의 R&D센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선진 기업들이 지식 생태계의 중요성에 공감했고 2003년부터는 외부 기업과 연구소들도 적극 참여해 HTCE가 급성장했다.

여기에는 에인트호번 시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에인트호번 시는 ‘모든 정책 결정의 최우선에 필립스를 둔다’는 원칙하에 HTCE 조성에 3400억 원을 투자했다. 또 HTCE의 운영과 기업 유치, 행정 지원 업무는 지역개발공사가 담당해 필립스는 기업 활동에만 전념하도록 배려했다.

이쯤 되면 에인트호번 시가 필립스를 너무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하다. 하지만 에인트호번에 회사를 세운 필립스는 지역 거주 근로자들을 위해 좋은 주택을 지었고 문화, 교육, 의료시설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에인트호번 시민은 자연스럽게 필립스의 기업시민으로 변해갔다.

에인트호번 사례에서 보듯 성공적인 기업도시는 기업과 공공기관이 합심해서 만드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각각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우수한 기업도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기업도시가 곧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공공정책실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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