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한국 헤지펀드 깜짝 실적

  • 입력 2009년 2월 26일 02시 57분


작년 국제평균 -19% 추락속 일부는 14% 수익

국내 4개 금융사 운용… 해외투자가 러브콜도

“그동안 미팅 약속조차 잡기 어려웠던 홍콩의 한 대형펀드에서 만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싱가포르 우리앱솔루트파트너스 김중백 법인장의 목소리는 지난해 만났을 때보다 훨씬 밝았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 기자와 만난 김 법인장은 “청산되는 헤지펀드가 늘고 있다”며 “펀드매니저들이 짐을 싸면서 이들이 거주하는 시내 고급 주택가의 임차료가 낮아질 정도”라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첨단 금융산업의 총아(寵兒) 헤지펀드 업계에 국내 금융사 4곳이 도전장을 내민 지 1년이 지났다. 4개사는 싱가포르에 자기자본을 투자해 5개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용해왔다.

헤지펀드 역사상 최악의 해였지만 일부 펀드가 좋은 성적을 거둬 주목을 끌고 있다. 처음 출자할 때만 해도 운용 경험이나 쌓자는 계획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펀드들은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명실상부한 헤지펀드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 헤지펀드 시장 위축에도 수익률 선전

금융사들의 성적은 천차만별이지만 지난해 헤지펀드 업계가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은 것을 고려하면 대체로 선전했다는 평가다.

한국투자증권이 지난해 2월 싱가포르에 설립한 헤지펀드 ‘K-아틀라스’는 지난해 말 기준 수익률이 달러 기준 14.33%의 수익을 냈다. 우리투자증권이 7월 설립한 헤지펀드 ‘글로벌 어퍼튜니티 펀드’의 수익률도 2.24%다. 한편 마이더스에셋자산운용은 12%의 손실을 냈다.

헤지펀드 수익률을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하나인 크레디트스위스 트레몽지수가 2008년 말 기준 1년 수익률이 ―19.1%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들이다.

명지대 경영학과 이호진 교수는 “헤지펀드 사업 전반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인데 이 정도 수익률이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며 “무엇보다 지난해와 같은 대폭락장에서 큰 경험을 쌓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펀드의 성적이 좋은 이유는 보수적이고 단순한 투자전략 덕분이다.

K-아틀라스의 김병규 이사는 “경기에 둔감한 방어주를 매입하고 고평가된 경기 민감주를 공매도하는 전략과 일정 비중 이상 유동성을 확보하는 리스크 전략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김중백 법인장은 “지난해 전 세계 증시 상황이 나빠 주식은 보수적으로 운용한 반면 신용도가 높은 전환사채(CB)나 변동성이 높은 외환 분야에 투자해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장 수익률 대비 초과 수익을 내면서 해외 투자가들로부터 러브콜도 받고 있다. 국내 기관뿐 아니라 미국, 유럽의 기관투자가들이 K-아틀라스에 투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앱솔루트파트너스도 3월에 해외 프라임 브로커(헤지펀드의 거래, 자금 보관 등을 돕는 업체)와 콘퍼런스를 갖는 등 지속적 관계를 쌓아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국내 본격 도입까지는 시간 걸릴 듯

헤지펀드는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위험 세력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금융업계에서는 헤지펀드를 국내에도 도입해 시장의 유동성을 늘리고 투자 기법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금융위기로 자산 가치가 많이 하락한 이때에 헤지펀드가 도입돼야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초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국내에서도 헤지펀드를 도입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생겼지만 구체적인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국내 투자자들이 당장 헤지펀드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금융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헤지펀드 설립 절차를 간단하게 하고, 금융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금융사들이 헤지펀드 설립을 위해 싱가포르를 찾는 것은 설립 초기 법인세가 면제되고 설립 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노근환 연구원은 “‘헤지펀드는 위험하다’는 선입견과 달리 헤지펀드 수익률은 채권과 비슷할 정도로 변동성이 크지 않다”며 “국내에 도입되면 자산 배분 차원에서 좋은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