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업체들 “내가 원조” 전쟁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서브노트북, 미니랩톱, 넷북… 비슷한 기능 제품 ‘독자 개념’ 부여

“시장 선점효과” “소비자 혼란 유발” 엇갈려

LG전자는 최근 미국 인텔과 손잡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휴대용 인터넷 기기인 ‘MID(Mobile Internet Device)’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MID와 비슷한 제품은 많았다.

수년 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HP는 손 위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다는 의미의 ‘팜 사이즈PC’나 주머니 속 컴퓨터라는 의미의 ‘포켓PC’ 등을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선보였던 울트라모바일PC도 기능과 외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해당 기업들은 주요 부품과 운영체계(OS), 정보입력 방식 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한 일반소비자가 차이점을 구분하기는 무척 어렵다.

일반소비자의 눈에는 기업들이 거의 유사한 전자 제품군을 이름만 바꿔서 새로 내놓는 것으로 비친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기업들이 거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개념 전쟁(concept war)’ 때문에 나타난다.



○ 새로운 제품군 창조 경쟁

개념 전쟁이란 제품군(카테고리)을 새로 만들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을 말한다. 기존 제품군을 놓고 차별화하는 ‘브랜드 전쟁’과는 다르다.

새로운 영역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원조(元祖) 전쟁’이다.

개념 전쟁은 짧은 기간에 혁명적인 변화를 겪어온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일본 소니는 게임기로 알려진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을 절대로 ‘휴대용 게임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신개념 휴대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고집한다. 기존 게임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만들기 위해서다.

KT는 LG데이콤 등 경쟁업체들이 먼저 내놓은 인터넷전화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았다. 다양한 서비스를 더한 ‘SoIP(Service over IP)’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김중태 김중태컴퓨터문화원장은 “기업들은 기존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롭게 만든 개념을 쏟아내고 있다”며 “개념을 선점하면 브랜드와 시장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념 전쟁으로 성공한 기업은 인텔이다. 인텔은 과거에는 PC 중앙처리장치(CPU)에 ‘386’ ‘486’ 등 성능 기준의 일반적인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같은 명칭을 사용한 미국 AMD 등 경쟁업체에 추격당하자 ‘펜티엄’, ‘센트리노’ 등 독자적인 개념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후 인텔은 AMD를 따돌리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 정보 과잉 시대, 기업들의 생존 전략

전문가들은 디지털 시대의 소비 행태는 브랜드보다 카테고리의 영향력이 크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제품의 ‘브랜드의 의미(brand meaning)’보다 ‘카테고리의 의미’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민 브랜드앤컴퍼니 대표는 “신제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과잉 시대에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KTF의 3세대(3G) 이동통신 브랜드인 ‘쇼(SHOW)’도 화상전화라는 카테고리를 브랜드에 앞세운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명선 한국정보사회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앞으로도 제품의 작은 차이를 이성적으로 알리기보다 아예 ‘내 것은 다른 종류의 제품’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름만 달리하는 데 그칠 경우 오히려 소비자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류한석 소프트뱅크 미디어랩 소장은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마케팅 차원의 개념 전쟁은 사용자 입장에선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