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트 수주 91% 추락

  • 입력 2009년 2월 10일 02시 59분


글로벌 위기 앞에 수출효자도 맥 못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지어질 ‘하샨복합화력발전소’ 건설 공사(총 20억 달러 규모)는 지난해 하반기에 1단계 공사가 취소됐다. 2단계 공사도 발주처인 두바이전력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최근 공사 발주를 무기한 연기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올 1분기(1∼3월)에 발주할 것으로 알려졌던 120억 달러 규모의 정유 플랜트 건설 공사도 발주가 연기됐다.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플랜트 공사 금액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자 발주처가 시간을 끌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용경색-유가급락으로 발주처 사업연기-취소 잇달아

10대 건설사 1월 수주액 15억달러… 작년 58.6% 수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주금액을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해외건설이 올해 들어서는 수주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과 국제유가 급락 등의 여파로 발주처들이 사업발주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늘면서 생긴 현상이다.

○ 해외 총 수주액 작년의 70% 수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5위권인 대형 건설업체 A사는 최근 중동 플랜트시장에서 허탈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초부터 5억 달러 규모인 정유플랜트 공사 2, 3건을 따기 위해 임원급과 실무진을 대거 파견해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발주처가 지난달 입찰을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공고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입찰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로선 무기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며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10위권인 대형 건설업체 B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입찰 경쟁에 뛰어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유 관련 플랜트 사업 2건의 입찰이 계속 연기돼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발주처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자금 사정이 안 좋아서 연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해외건설 공사의 발주가 크게 줄어든 것은 세계적인 돈 가뭄 현상으로 중동 발주처들도 자금사정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 건물을 짓는 개발사업이 많은 두바이에서 대형사업이 줄줄이 차질을 빚는 것도 글로벌 신용경색과 관련이 크다.

중동 발주처들의 주 수입원인 국제원유가격이 급락한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원유가격이 내리면 중동 석유회사들이 공사비를 지급할 여력이 줄어든다. 원유 등 국제원자재가격 하락으로 플랜트공사 등의 자재 값이 떨어졌고 이는 공사금액 감소로 이어졌다.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기획팀장은 “해외 발주처들이 공사금액을 줄이기 위해 사업 발주시기를 계속 늦추는 게 한국 건설사들의 수주액 감소의 주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건설사들은 해외에서 총 37억5972만 달러어치의 사업을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수주액(총 53억4521만 달러)의 70% 수준이다.

특히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사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해온 플랜트 관련 공사는 지난달 3억1184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2%로 추락했다.

10대 대형 건설사들의 해외사업 수주규모도 크게 줄었다. 올해 1월 10대 대형사가 확보한 해외사업은 15억2539만 달러로 지난해(26억397만 달러)의 58.6%에 그쳤다. 10대 대형 건설사들이 전체 해외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8.7%에서 40.6%로 떨어졌다.

○ 일감 없어도 생존 위해 수주전

한국의 대형 업체 3곳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된 가스정제공장 플랜트의 공사 금액을 낮춰 발주처에 다시 제출했다. 자재값이 떨어지는 만큼 공사비를 깎자는 발주처의 요구를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발주처가 미래에 자재값이 내려가는 것을 예상해 공사비를 깎자고 요구하고 있다”며 “일감이 없기 때문에 수익이 거의 나지 않더라도 무조건 수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사업을 확보하는 단계에서부터 수익성과 발주처의 자금사정을 체크하는 리스크 관리 기능이 필요하다”며 “무턱대고 사업을 확보하면 나중에 건설사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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