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불안 ‘불끄기’서 경기부양 ‘불씨 살리기’로 가야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 뭘 해야하나

경기부양, 신속 - 과감한 재정지출로 서민 일자리 확충

구조조정, 돈 도는 속도 둔화… 포기할 곳 빨리 걸러야

경제가 추락하는 속도와 그 강도가 예상보다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제정책의 초점이 금융시장 안정에서 본격적인 경기 부양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으로 번진 뒤 수출과 소비, 투자, 일자리를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는 등 실물경제의 붕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불황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단기간에 적극적으로 경기를 부양하지 않으면 그 부담으로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실업과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정책의 무게중심을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발등의 불끄기’에서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의 불씨를 살리는 쪽으로 옮겨야 한다”며 “재정집행 속도를 더 높이고, 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정책 타이밍 또 놓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16조 원의 재정지출 확대, 35조 원의 감세(減稅) 등 51조 원 규모의 재정확대 방안을 마련했다. 문제는 정부가 작년에 이 같은 방안을 만들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 추락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재정 집행의 ‘속도’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경기 부양책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새로 재정을 투입할 곳을 찾으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계획된 사업부터 빨리 돈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부양과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정책도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고려대 이만우(경영학) 교수는 “세율을 무작정 낮춘다고 고용이 늘지는 않는다”며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세액을 감면해주는 등 ‘정책 타기팅(targeting)’이 분명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타이밍을 놓치는 실기(失機)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한 논의가 4월부터 나왔는데도 정치권의 발목잡기로 집행이 뒤늦게 이뤄졌고, 금리를 낮추는 속도도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 기존에 발표한 녹색 뉴딜 및 신(新)성장동력 사업을 최대한 서둘러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재정 여력이 많지 않아 지금은 ‘조기 집행’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2분기부터는 조기 집행에 따른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여력을 확충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조기에 편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 구조조정으로 부양효과 극대화

전문가들은 경기부양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실기업이 살아남으면 은행이 자금 공급을 꺼려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도 돈이 시중에서는 돌지 않는 ‘돈맥 경화’ 양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말 기준 시중은행이 기업에 대출한 자금은 459조7000억 원으로 전월에 비해 6조6000억 원 감소했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신규 대출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시중에 풀린 돈이 줄다 보니 통화 한 단위가 거래에 사용된 횟수를 뜻하는 통화유통속도는 2007년 3분기 0.752에서 2008년 3분기 0.703으로 뚝 떨어졌다. 돈이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 것이다.

이런 돈맥 경화를 해소하려면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지원할 곳과 포기할 곳을 가린 뒤 시중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건국대 고성수(부동산학) 교수는 “1차 구조조정 때 부실이 심각한 건설업에서 퇴출된 회사가 단 한 곳인 것은 문제”라며 “건설과 조선, 금융업에 대해 실효성 있는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줄어든 상태에서 시중에 자금을 풀면 자금 회전속도가 빨라져 경제의 활력을 키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보증여력 확대 △금리 추가 인하 △중앙은행의 기업어음(CP) 매입 △총액대출한도 확대 등의 조치를 통해 유동성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 일자리 창출, 일자리 나누기 시급

청년층과 서민층의 일자리를 늘리고 경기침체에 취약한 계층을 대상으로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짜는 것도 정부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실장은 “외환위기 때 실업률이 8.5%까지 오르고 개인파산과 신용불량자가 늘면서 이혼율, 자살률, 범죄율이 크게 증가했다”며 “사회안전망 강화 등의 정책이 동반돼야 경제 불안에 따른 사회 불안 확대를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만우 교수는 “정부가 만들어내는 임시 일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없어진다”며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도록 정부가 각종 규제를 신속히 타파하고 기업과 노동조합은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 나서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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